두산시절 변진수. 이석우 기자

 

설 선물로 ‘야구 실력’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아는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실력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가리지 않고 한다.

개명도 그 방법 중 하나다. 기술이 발달하고 매체도 다양화 됐을 뿐 아니라 정보도 다채로워졌다. 선수들이 직접 유튜브를 통해 야구 관련 정보를 얻고, 타구의 발사각도, 공의 회전수, 식단 조절 등 야구의 많은 부분이 보다 폭넓게 과학으로 설명되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야구를 더 잘 할 수만 있다면 이름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선수들은 결코 줄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파악한 2010년대(2010~2019년) 개명선수는 총 69명이다. 10년간 연평균 7명이 리그에 등록된 자신의 이름을 바꿨다. 해마다 그 숫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결코 숫자가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2013년 10명에 이르렀던 개명 선수 숫자는 2017년에도 12명에 달했으며, 2018년에도 9명이 개명했다.

지난해에도 6명이 개명한 데 이어, 바뀐 해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22일 현재 벌써 4명이 개명 행렬에 동참했다. 두산에서 뛰다 지난해 말 2차 드래프트로 KIA로 이적한 사이드암 투수 변진수가 변시원으로, 2014년 NC에서 데뷔해 어느덧 프로 7년차를 맞는 포수 박광열이 박대온으로 각각 이름을 바꿨다. 22일에는 KT의 투수 한승훈과 외야수 임성재가 각각 한대겸, 임지한으로 개명했음을 알렸다. 아직 1군 데뷔 무대를 치르지 못한 선수들이다. 지난해 말에 이름을 바꾼 외야수 백진우(한화)도 있다. 그는 LG와 한화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아 기회를 몇 차례 잡았으나 주전으로 도약하지는 못했다. 2009년 육성선수로 프로에 발을 딛었을 때 그의 이름은 백창수였다.

2010년대 말에 이르러서도 개명 선수 숫자가 줄지 않은 것은, 1군 구단 수가 10개로 늘어나 등록 선수 숫자 자체가 늘어난데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개명 선수들이 지난해 여럿 두각을 나타낸 것도 선수들의 개명 욕구를 키운 요인인 듯 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지난해 LG 선발진에 합류했던 이우찬이다. 그는 ‘송진우의 조카’ 이영재로 2011년 입단했지만 새 이름으로 지난해 선발 로테이션에 들더니 프로 첫 승까지 따냈다. 롯데 강로한도 강동수에서 이름을 바꾸고 뛴 첫 시즌에 100경기 넘게 출전하면서 주전 내야수로 자리했다.

두산에 2017년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암 수술을 받았다가 지난해 재기해 마운드의 빈 자리를 채웠던 사이드암 최원준(개명 전 최동현)도 있다. 위 세 선수는 1군 무대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것 이상의 악재들을 경험했지만 나란히 지난해에서야 비로소 빛을 봤다. 지난 시즌 개막하기 전에도 팀의 주요 전력으로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기도 했다.

새해. 그리고 설날은 새로운 다짐의 시간이다. 개명과 야구 실력 향상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없는 것이지만, 바뀐 이름은 선수 생활이 풀리지 않았을 때의 기억을 버리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게 해주는 요인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팀 승리와 자신의 활약을 위해 자신의 주변의 줄이고 싶어하는 야구 선수들이,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개명을 2020년에도 택하는 이유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