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의 수은주는 지난해 4월처럼 40도를 가리켰다. 흙먼지를 헤치며 사바르 시장을 통과하고 나니 거대한 플라스틱 슬레이트 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흔한 공사 현장처럼 보이는 슬레이트 벽에는 노동단체들의 로고와 함께 현지어인 벵골어로 쓰인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1년 전 라나플라자 붕괴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은 그렇게 벽에 가려져 있었다.
지난해 4월24일, 5개 의류공장이 입주한 8층 건물 라나플라자가 무너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1134명, 부상자는 2515명이다. 희생자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뼈와 치아로 유전자 감식을 벌여 사망자들의 신원을 추가로 파악 중이기 때문이다.
▲ 확인된 희생자 1134명… 300여명 시신도 못 찾아
피해 보상 지지부진… 건물주 처벌도 미적미적
슬레이트 벽을 지나자 1650㎡(약 500평) 남짓의 폐허가 눈앞에 펼쳐졌다. 참사 현장에서 건물의 원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건물 잔해와 뒤엉킨 섬유 원단, 기계 부품들을 보고서야 이곳이 의류공장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시선을 돌리니 납작하게 찌그러진 승용차 차체 2개가 보였다. 라나플라자 지하 1층에 주차됐다 건물 붕괴로 망가진 차량이었다. 상황을 모르는지 남자 어린이 한 명이 무너진 차체 사이를 해맑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참사 발생 후 1년이나 지났지만 현장에는 공장에서 쓰던 물건들이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시멘트 덩어리, 벽돌조각, 모래 등으로 뒤섞인 둔덕의 높이는 최대 3m나 됐다. 라나플라자 입점 업체였던 팬텀택어패럴의 회사 소개 및 제품 디자인이 적힌 클리어파일이 바닥에 나뒹굴고, 구급대원이 찼던 것으로 보이는 ‘FIREMAN’이라 적힌 붉은색 완장도 눈에 띄었다.
무슬림의 휴일인 이날, 당시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그때를 떠올리며 현장에 나타났다. 희생자들의 가족과 그들을 지켜보는 행인들까지 30~40명이 모였다. 당시 열여덟 살이던 딸 루비나를 잃은 아르지나(55)와 현장에서 구출됐던 노동자 야스민 악딸(29)은 북쪽 끝 랑푸르주에서 300㎞를 달려왔다.
참사 전날 라나플라자 외벽에 생긴 거대한 균열을 가장 먼저 보도한 민영 에쿠쉬TV의 나즈물 후다 기자가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후다 기자는 “라나플라자 참사와 관련해 두 개의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지금 현장에는 증거가 거의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라나플라자 참사 후 건물주가 불법 용도변경하고, 무리하게 기계를 설치한 혐의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후다는 참사 현장에 남은 증거물들이 고물상들의 손에 팔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건축법 위반과 살인 혐의로 기소된 건물주 소헬 라나는 지난 3월 말 건축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보석 결정을 받았다. 라나는 집권당인 아와미당의 지역 청년 조직 간부이기도 하다.
기자들의 등장을 알았는지 한 여인이 두 딸의 사진과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누르자(55)의 손에는 채 스물이 못된 나이로 현장에서 숨진 두 딸 셀리아와 아를리아의 얼굴 사진, 그리고 정부가 발급한 사망확인서류가 들려 있었다. 아직까지 보상금을 받지 못한 유가족들이 사망확인서를 기자들 앞에 내미는 경우가 있다. 가족들이 사망자 명단에서 혹여나 누락됐는지 기자들이 확인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누르자는 1년 전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와 잔해 더미 위에서 아를리아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누르자는 셀리아의 시신도 직접 찾을 수 있을까 해 매일 한두 번씩 사고 현장을 찾았다. 평소 잘 보지도 못하던 딸들을 사고 이후에야 싸늘하게 맞이했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누르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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