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1일]강남 뒷골목 차량에 부딪힌 남성 "치료비는 괜찮으니 커피나 한 잔" 이유는?

박씨가 ‘사이드미러’에 고의로 손목을 부딪쳐 사고를 낸 뒤 운전자와 이야기 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

“덜컥.”

서울 강남 주택가의 이면도로에서 차를 몰던 여성 운전자 ㄱ씨는 소리가 난 조수석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창 밖으로 어딘가에 부딪친 듯 접힌 사이드미러와 왼팔을 툭툭 털고 있는 흰 점퍼 차림의 남성이 보였다. 차 옆을 지나던 남성의 팔이 사이드미러와 부딪친 듯 했다. “괜찮아요?”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려 ㄱ씨가 물었다. 남성은 ㄱ씨를 향해 고개를 빠르게 두어번 끄덕이며 “괜찮아요”라고 말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ㄱ씨는 다시 차를 몰았다. 다음 골목에서 우회전해 목적지에 차를 댔다. 차에서 내리니 아까 흰 점퍼 남성이 다시 눈에 띄었다. ㄱ씨는 그에게 다시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손이랑 팔은 괜찮은데… 핸드폰이…·”

남성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는 액정이 깨져 있었다. 사이드미러에 손목이 부딪혔고,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길가에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어쩔 줄 모르던 ㄱ씨에게 남성은 “치료비는 괜찮으니 스마트폰 수리비를 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수리비는 지금 말고 나중에 계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연락처 주세요.…그런데,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박씨가 사어드미러에 고의로 손목을 부딪쳐 사고를 낸 위치.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

서울 강남 일대 이면도로에서 서행하던 차를 노려 사이드미러에 고의로 손목을 부딪힌 후 소액의 스마트폰 액정 수리비를 수백회 뜯어낸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주로 여성 운전자를 고의사고 대상으로 삼고 피해 여성 중 한명과는 실제 교제하다가 헤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들의 입금액은 총 2400만원이지만, 실제 피해금액은 1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차량과 고의로 접촉사고를 내고 스마트폰을 길에 떨어뜨린 뒤 수리비를 요구한 혐의(사기)로 박모씨(40)를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손목이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부딪히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을 깨뜨렸다. 운전자가 먼저 박씨의 상태를 물으면 ‘다친 곳은 없다’며 안심시킨 뒤 계속 서행하던 차로 다가가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내밀며 수리비를 요구했다. 수리비는 대개 현장에서 받지 않고 후에 계좌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뒤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후 박씨는 약 10만원의 액정 수리비가 찍힌 A/S 내역서를 운전자에게 보냈다. 그러면 운전자들은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요구액보다 많은 20만~30만원의 수리비를 박씨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는 소액의 스마트폰 수리비보다는 여성과의 교제를 주목적으로 삼고 고의사고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 200명 중 78%인 156명은 여성이었다. 여성 피해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나이 또래인 30대(40%)와 40대(31%)가 주요 타깃이었다. 박씨는 사고를 낸 뒤 운전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이면 “A/S센터까지 데려다달라” “시간 되면 차 한잔 하자”며 접근하기도 했다. 실제 한 여성 운전자와는 6개월 동안 교제를 하다 헤어지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박씨는 같은 장소에서 수차례 범행을 저지르다 덜미가 잡혔다. 지난해 9월 김모씨(45·여)가 골목길에서 운전하다 박씨와 부딪혀 스마트폰 수리비를 물어줬는데, 두달 뒤 김씨의 언니(49)도 같은 장소에서 박씨와 사고가 난 것이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난 사고를 이상히 여긴 자매의 신고를 바탕으로 경찰은 8개월 동안 주변 탐문 및 폐쇄회로(CC)TV 확인작업 및 통신자료 조회·계좌추적을 벌여 박씨를 붙잡았다. 박씨는 운전자들에게 실제 이름이 아닌 동생의 이름을 대 사칭했으며, 신용불량자인 자신 대신 동생의 계좌로 수리비를 입금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확인된 피해자는 200명, 피해금액은 240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의 계좌로 900여명의 사람들이 보낸 1억원 가까운 돈이 출금되지 않았다며 실제 피해는 확인된 것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각 개인이 물게 된 피해액이 비교적 소액인데다, 이미 지난 일이라서 경찰 조사가 귀찮아 진술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현장에서 수리비를 직접 건넨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액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의 여죄를 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