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일 밀렸으니 신혼여행 스케줄 줄여라, 예약 포기하고 임원 워크숍 참석해라…

한 금융기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ㄱ씨는 얼마 전 울며 겨자 먹기로 신혼여행 일정을 일주일에서 3일로 줄였다. 직장 상사로부터 “팀 전체가 매달려야 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다”며 여행 일정을 줄이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ㄱ씨는 일주일간의 신혼여행 계획을 그간 미리 알려왔고 구두로 승인까지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비행기표와 숙박 예약을 취소하면서 위약금 수십만원을 물게 됐다.

입사 1년차 직장인 김소연씨(26)는 여름 휴가 일정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사내에서 가장 바쁜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부서원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휴가를 취소하면 항공편 및 렌터카·호텔 예약 취소 위약금 등으로 총 2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는 “회사 상황 때문에 위약금을 물게 되지만 이를 회사에 청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회사 근무 환경이나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어 휴가 일정을 취소 및 연기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은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 때문에 발생하는 위약금을 고스란히 물어야 하지만 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15년 26개국 직장인 9273명을 상대로 한 유급휴가 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직장인들의 67%는 휴가를 가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 회사가 2013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는 한국 직장인들 중 회사 업무 때문에 휴가를 취소·연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65%에 달했다. 조사대상국 평균(43%)의 1.5배 수준이다.

한 외국계 회사에 대리로 근무하는 ㄴ씨(33)도 거래처와의 미팅이 갑작스레 잡혀 이달로 예정된 휴가를 취소해야 했다. ㄴ씨와 같은 회사의 팀장도 상무로부터 “임원 워크숍에 동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2박3일간의 일본 여행 계획을 하루 줄였다고 한다. 

회사 측 사정으로 휴가를 변경해 노동자가 물게 되는 위약금을 돌려받는 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근로기준법은 연차유급 휴가를 신청하는 권한은 노동자에게 있으나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회사가 노동자의 연차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노동법률사무소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회사가 노동자의 연차 시기를 조정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취소 위약금을 받을 수는 있다. 

다만 승소를 장담할 수 없다. 김 노무사는 “회사가 ‘괘씸죄’ 등의 이유로 징계하듯 휴가 일정을 바꾼 경우는 승소 확률이 높지만, 갑자기 생긴 업무 때문에 휴가를 조정했다면 따져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받아내야 할 위약금에 비해 소송비용이 많이 드는 점도 노동자들이 소송을 꺼리는 요인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