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중학생들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올린 갓건배 ‘저격 영상’ 목록. 유튜브 갈무리

초등 중학생들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며 올린 갓건배 ‘저격 영상’ 목록. 유튜브 갈무리

“자기가 남친이랑 헤어져서 대한민국 남자들을 다 싫다고 한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야.” “이기적이지.”

지난 10일 유튜브에 오른 한 영상에는 초등학생 쯤 돼보이는 남학생 2명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이 가리키는 사람은 ‘남성혐오’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다른 유튜버들로부터 살해협박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 유튜버 ‘갓건배’였다.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많은 유명 남성 유튜버들이 ‘갓건배’의 남성혐오 발언을 비난하는 동시에 ‘신상을 알아냈다’ ‘집에 찾아가겠다’고 한 이른바 ‘저격 영상’을 올리자 어린 남학생들도 이에 동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의 비난 수위는 일부 성인 유튜버의 ‘살해 협박’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된 남학생들에게 올바른 성(性)인식을 형성하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 9~10일자로 유튜브에서 ‘갓건배 저격’을 검색하자 영상이 총 176개가 나왔다. 이들 중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로 보이는 얼굴이 공개된 영상은 17개였다. 제목에 ‘저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영상도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초등·중학생이 얼굴을 공개한 채 ‘갓건배’를 비난하는 영상은 수십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발언 내용은 문제가 된 성인 남성 유튜버들의 ‘신상털이’나 ‘살해 협박’만큼 수위가 높지는 않았다. ‘갓건배’가 남성들의 여성혐오 표현을 ‘미러링’한다며 6·25 전쟁과 참전용사를 거론하며 남성들을 비난한데 대해 “네가 뭔데 대한민국 남성들을 욕하냐” “저같은 초등학생들도 6·25 참전용사에게 욕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애만도 못한 것” “한국 남자가 싫으면 그냥 외국으로 가라” 등의 발언을 했다. 이들 중에는 ‘갓건배’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욕설을 섞어가며 말한 이들도 있었다.

한 유튜버는 자신이 경찰에 ‘갓건배’를 상대로 고소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영상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직접 쓴 듯한 ‘고소장’도 있었다. 고소장은 “‘갓건배’는 한국 남자에게 큰 모욕감을 줬으므로 고소장을 씁니다”라는 문구를 담았다.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이 상대방을 비방하고 법적 대응까지 벌인 사례들을 따라한 듯 했다. 이런 학생들 대부분은 ‘갓건배’로 추정되는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고 주소지로 찾아간 성인 남성 유튜버들의 인터넷 방송을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와중에 ‘갓건배’를 비판했던 한 남성 유튜버가 지난 9일 ‘갓건배 저격하는 초등학생들에게’라는 영상을 올리기까지 했다. 그는 “물론 (저격 영상을 만들려는) 마음은 이해간다. … 하지만 너무 어리다. 여러분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긴 어렵다”며 “여러분의 영상이 뉴스에 나오거나 누군가 퍼가서 돌아다니면 평생 꼬리표가 달릴 수 있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11일까지 조회수가 40만에 육박한 이 영상 때문인지 ‘갓건배 살해 협박’ 영상이 본격적으로 보도된 지난 10일 이후 초등·중학생들의 영상들 중 일부가 삭제되기도 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초등학교 5~6학년이 되면 여성을 비하하고 반대하는 과정에서 지배, 정복, 강화 같은 개념을 알게 되고 남성성도 함께 형성된다”며 “여성을 혐오하면서 자신이 남성임을 인정받는 것도 이 때쯤 이뤄져왔는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간이 바뀌어 관련 영상을 보거나 직접 동조 영상을 올리는 형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남성들이 혐오발언을 듣는다고 해서 여성처럼 일상 생활에서의 위협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어린 학생들이 ‘미러링’된 남성혐오 표현을 비판하기에 앞서 현재의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윤태’라는 아이디를 쓰는 남성 유튜버가 ‘갓건배’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해 논란이 됐다.

유튜버 ‘김윤태’는 ‘갓건배’로 추정되는 여성이 사는 집 주소를 공개하고 차를 타고 직접 그곳에 찾아가는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했다. 그는 방송에서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 졸라 죽이겠다”고 말했다. 다른 유명 남성 유튜버 ‘신태일’도 자신의 유튜브에 ‘갓건배 얼굴을 찾았다’며 한 여성의 사진을 공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갓건배’는 여성 게이머로 알려져 있으며 유튜브에서 일부 남성 게이머들이 여성에 대해 성희롱이나 모욕적 언사를 하는 남성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이른바 ‘미러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유튜버이다.

윤승민·심윤지 기자 mean@kyunghyang.com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공개한 BJ 갓건배 상대 ‘고소장’ 유튜브 갈무리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공개한 BJ 갓건배 상대 ‘고소장’ 유튜브 갈무리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