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벌금 앞에 작아지지 않는 당신을 응원해요”

ㆍ차별 철폐 운동으로 벌금형 받고 노역 택한 장애인 활동가의 가족들은 지금…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에 참여하다 선고받은 벌금을 내는 대신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기로 한 이경호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 대표, 박옥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 이형숙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왼쪽부터)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검찰에 출두하기에 앞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장애인인 어머니가 벌금 대신 구치소 노역을 결정하셨을 때 말리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반대하면 오히려 어머니가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입니다.”

열흘 동안 구치소에서 노역을 해야 하는 이형숙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50)의 딸 조은별씨(23)는 1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전동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생활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2012년 8월부터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일대에서 열리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에 참여해 왔다. 2015년 8월 농성 3주년 시위 때 주한 미국대사관 앞 횡단보도에서 휠체어를 멈춰 교통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최근 대법원에서 100만원의 벌금이 확정됐다.

이 위원장은 벌금을 내는 대신 구치소에서 노역을 하겠다며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조씨는 “어머니는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하는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 운동에 투신한 어머니처럼 조씨도 김포장애인자립활동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정부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활동가들을 계속 탄압하려는 것 같다”며 “검찰에 출두하기 전날 저녁에 맛있는 것이라도 먹자고 했더니 어머니가 ‘구치소 화장실이 불편해 안 먹는 게 낫다’고 하셔서 속상했다”고 말했다.

박옥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54)과 이경호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 대표(57)도 벌금 대신 노역을 선택했다.

박 사무총장과 이 전 대표는 집회 시 신고된 경로가 아닌 곳으로 이동하며 경찰과 충돌했다며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각각 300만원과 90만원의 벌금형을 최근 선고받았다.

박 사무총장의 남편인 이상엽씨(50)는 “마음은 무겁지만 부부로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노역 투쟁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아내를 “동지처럼 지지하고 지원한다”는 이씨는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박 사무총장을 만났다. 이씨는 현재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아내가 다리가 붓는 림프부종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다. 여름이라 악화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에 참여한 장애인단체 활동가 12명이 최근 총 24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박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검찰에 들어가기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노역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세상에 알리려 노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지난 17일부터 구치소에서 벌금 10만원을 1일 노역으로 환산한 노역형을 살고 있다.

조은별씨는 “엄마가 벌금 앞에서 작아져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엄마와 함께 더 열심히 차별 철폐를 위해 싸우겠다”며 “노역까지 하는 만큼 어머니께서 원하시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엽씨는 “아내가 노역을 마치면 반려견과 산책하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윤승민·권도현 기자 me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