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코리아리그 최초의 유럽 선수이자 처음으로 한 시즌을 다 뛴 외국인 선수 부르 라조비치(SK호크스)가 ‘비인기 종목’인 한국에서의 소회를 밝히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가족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한국에서 고향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지난달 막을 내린 2018~2019 SK핸드볼코리아리그를 마친 부크 라조비치(31·SK호크스·등록명 부크)는 한국에서 한 시즌을 치른 소회를 이같이 전했다. 부크는 한국 핸드볼에 코리아리그가 도입된 2011년 이후 처음 뛴 외국인 선수로 큰 관심을 받았다. 동아시아클럽선수권에 참가중이던 지난달 26일 인천 송도 팀 숙소에서 만난 부크는 “한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제게 항상 친절하게 웃어줬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줬다”며 “시즌을 치르며 못만났던 가족들과 비시즌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 시즌 돌아와 팀의 우승도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몬테네그로 국가대표 출신 부크는 지난해 10월말 리그 미디어데이 때 국내 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핸드볼리그 활성화를 원했던 SK와 나쁘지 않은 대우 속에 새로운 도전을 원했던 부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한국 데뷔가 성사됐다. 한국 핸드볼 팬들에게 부크가 낯설었듯, 부크에게도 처음엔 한국 무대가 낯설었다. 부크는 “처음 한국 리그 경기를 치를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핸드볼 인기가 없어 조금 실망했다”고 말했다. 부크가 독일을 비롯해 핸드볼 인기가 높은 동유럽의 여러 리그에서 뛰어왔으니 아쉬움은 더 컸다. 그러나 부크는 “청주에서 치른 플레이오프 때 많은 SK팬들이 응원도구를 흔들며 응원해줬다. 그 순간만큼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것 같았다”며 감사를 전했다.

선수들도 부크의 적응을 도왔다. 부크는 “동료들이 나를 외국인이 아닌 한국 선수인 것처럼 대해줬다”며 “몇 선수와는 모바일 메신저로 짧은 영어를 주고받아 더 친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몬테네그로 출신인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스테판 무고사와는 가끔 시간날 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친구가 됐다. 부크는 “데얀(수원 삼성)도 몬테네그로 대표 출신으로 ‘K리그 레전드’라 들었다. 친해질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핸드볼 코리아리그 최초의 유럽 선수이자 처음으로 한 시즌을 다 뛴 외국인 선수 부르 라조비치(SK호크스)가 ‘비인기 종목’인 한국에서의 소회를 밝히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다만 부크에겐 시즌을 치르는 내내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꽤 컸다. 동갑내기 아내 바르바라 라조비치(31·슬로베니아)도 유럽 리그에서 뛰는 핸드볼 선수이기에 한국에 동행할 수 없었다. 부크의 말을 빌리면 바르바라는 “나보다 더 유명한 선수”다. 바르바라는 2018~2019시즌 루마니아 리그에서 뛰었는데, 그의 소속팀 CSM 부쿠레슈티는 이번 시즌 유럽핸드볼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오른 강팀이다.

2010년 세르비아 리그에서 함께 뛰며 만난 바르바라와 일곱살 아들 루카는 부크에게 소중한 존재다. 부크는 “하루에 2시간씩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지냈다.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건 한국생활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라며 “아내도 겨울에 시즌을 치르느라 바빴기 때문에 지난해 말 한국을 찾았을 때도 하루 정도밖에 함께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크는 “매 시즌 재계약을 해야하기에 함께 보낼 시간이 적긴 하지만, 부부가 같은 종목 선수로 뛰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크가 한국 진출을 고민하던 시점에서 “한국 핸드볼은 스피드가 강점이다. 도전해볼만 하다”고 조언해 준것도 아내였다. 그래서 부크는 부부 중 한 명이 핸드볼을 일찍 포기하는 상상은 아직 하고 있지 않다. 부크는 ‘비시즌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보장해줄 것’을 전제로 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뛰기로 했다. 기회가 된다면 부산이나 제주도 등 아직 가보지 못한 한국의 관광지도 가족과 찾을 계획이다.

부크는 핸드볼리그 데뷔 시즌 자신의 라이벌 팀 두산이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에서 ‘22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부크는 “두산은 강한 팀이다. 리그 MVP를 차지한 2번 선수(정의경)는 상대해보니 스마트하게 플레이를 잘하더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우승을 하고 싶다는 부크의 열망도 커졌다. 부크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올 시즌 우승하고 싶었는지 잘 알거다. 다음 시즌에는 치르는 모든 대회 우승하고 싶고, 한국 최고의 피봇 포지션 선수가 되고 싶다”고 열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나서 보탠 한마디에는 부크가 얼마나 한국에 잘 녹아들었는지, 또 우승을 열망하는지 잘 느껴졌다.

“이젠 한국에서 ‘강남 스타일’은 식상하잖아요. 다음 시즌에는 꼭 팀을 우승시키고 새로운 세리머니도 연구해서 선보일 거에요.”

인천|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