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마라톤 가운데 하나인 미국 보스턴 마라톤. 110년이 넘는 전통에 매년 2만명 이상의 건각들이 참여하는, 전 세계의 관심을 끄는 스포츠 행사다. 어김없이 미국 ‘애국자의 날’인 4월 셋째 월요일에 열린 올해 대회는 예년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참가선수들이 한창 결승선을 통과하던 지난 4월15일 오후 2시29분, 결승점 근처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연쇄 폭발로 3명이 숨지고 264명이 다쳤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용의자 색출에 나섰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8일에 미 연방수사국(FBI)이 두 용의자의 모습이 찍힌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날 오후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발생한 총격전에 두 사람이 등장했다. 10시간에 걸친 총격전과 추격전 끝에 용의자 한 명은 총격으로 숨졌고, 나머지 한 명은 총상을 입은 채 경찰에 검거됐다. 숨진 사람은 타멜란 차르나예프(26), 붙잡힌 사람은 조하르 차르나예프(20·사진). 둘은 체첸계 이민자 형제였다.

체첸 난민 아버지와 함께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형제의 경력 때문에 체첸 반군이나 이슬람 무장단체가 테러를 벌였는 이야기가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배후에 테러 단체가 있었는지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르나예프 형제는 테러 조직과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폭행 전과가 있던 형 타멜란에게만 사회 부적응 징후가 있었고, 두 형제는 그저 이슬람에 심취하고 러시아·체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 뿐이었다.

‘외로운 늑대(lone wolf).’ 1998년 11월 FBI와 미 샌디에이고 경찰이 백인 우월주의자인 알렉스 커티스 합동 수사에 ‘외로운 늑대 작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커티스는 자신의 동료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외로운 늑대’처럼 단독 또는 소규모로 활동하고, 다수가 동시에 혐의를 받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외부의 지원이나 명령없이 어떤 집단이나 사상을 위해 발생하는 테러를 일컫는 말이다. ‘이슬람 수호’를 앞세운 차르나예프 형제도 ‘외로운 늑대’로 결론났다.

테러는 최근 들어 점차 소규모화, 지역화되고 있다. 미국이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 사살에 성공하는 등 알카에다 같은 무장 테러단체들의 핵심을 궤멸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알카에다가 각지의 이슬람 무장단체에 지원을 하면, 지원받은 지역 단체들이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감행하는 식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이제 전 세계는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됐다.

지난 9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벌어진 쇼핑몰 테러는 지역화된 테러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예다. 무장괴한들이 인질극을 벌이고 총기를 난사해 최소 67명이 숨졌다. 이 사건의 배후엔 소말리아 이슬람 청년 무장단체인 알샤바브가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테러 활동을 거듭하고 있는 보코하람도 2009년부터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이슬람 무장단체다. 미국이 알샤바브 근거지 습격에 무인기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를 투입해 핵심 간부를 체포하려 한 시도도 최근 바뀐 테러 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된 테러를 해결하는 데는 대규모 공격보다 단체를 와해시키기 위한 핵심 조직원 공략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차르나예프 형제는 무장 단체와도 관련이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크게 얽히지 않았다. 무고한 시민 수십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뒤에도 재판정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조하르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권투에 재능이 있고 음악감상을 즐기며, 미국 시민권까지 보유한 평범한 학생들을 미국 사회가 "테러범"으로 만들었다는 자성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대상도, 목적도 점차 다양해지는 테러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살인 등 총 30개 혐의로 기소돼 내년 1월 사형 구형을 기다리고 있는 조하르는 알고 있을까.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