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민(왼쪽)과 오주원. 이석우 기자·연합뉴스

 

KBO리그에 에이전트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된 뒤 두번째 오프시즌이 진행중이다. 선수가 에이전트에 협상 대부분을 맡긴 채 운동 및 개인 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은 이제 낯선게 아니다.

그렇다고 에이전트 제도가 프로야구에 완벽히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이번 FA 협상 테이블에도 에이전트 없이 직접 협상중인 선수들이 여럿 있다.

베테랑 김태균(37)도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고 있다. 김태균은 에이전트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야구 외의 활동에만 도움을 받고 있을뿐, FA 협상은 직접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석민(34)의 경우는 아예 에이전트를 따로 두지 않고 직접 협상에 나서고 있다. 박석민과 나이가 같지만 데뷔 후 처음 FA가 된 오주원(34)은 계약 초반에 에이전트를 뒀으나 지금은 계약을 해지하고 직접 협상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스캇 보라스가 이끌어 내는 ‘대박 계약’만큼은 아니더라도, 에이전트는 높은 협상력으로 선수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존재들이다. 선수들은 그 기대를 안고 일정 수수료를 감수하고 에이전트를 택한다. 그러나 수수료가 아쉬워 에이전트를 선임하기 어려운 저연차·저연봉 선수들이 아니라 연봉이 적지 않은 베테랑들이 에이전트 없이 직접 협상을 택하는 건, 그만큼 아직까지도 에이전트들의 협상력에 의문부호가 붙어있음을 드러내주는 단면이다.

지난시즌 FA 시장에서도 에이전트들이 합리적인 묘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여러 선수의 협상 과정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바 있다. 이번에도 LG와 FA 계약을 마친 오지환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에이전트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구단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됐다. FA 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 에이전트가 선수가 만족할만한 계약 금액을 끌어오지도 못하게 되면서 선수들은 직접 협상에 나서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현재 FA 시장의 특수한 상황도 이같은 흐름을 부추겼다. 현행 FA 제도에서는 ‘S급 스타’가 아닌 이상 타팀과의 협상 및 이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소속팀과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적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도장을 찍느냐가 관건이 됐다.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확한 실력이나 팀내 위치만큼이나 원소속팀과 쌓아온 관계를 협상과정에서 카드로 삼을 수 있다. 김태균과 오주원의 경우는 해외 진출 기간을 빼고는 한 팀에서만 꾸준히 활약해 온 ‘프랜차이즈’라는 상징성이 있는 선수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가 아닌 에이전트와 협상하면 선수들과의 ‘정’을 배제하고 협상할 수 있는 게 편하지만 선수와의 대면 협상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가 협상에 특별히 유리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수에게 좋은 계약을 끌어내지 못할거라면 차라리 선수가 과거의 정에 호소하는 게 더 나은 협상전략일 수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