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란이 지난 11일 전남 무안 전남체고 역도연습장에서 바벨을 들어올리며 연습하고 있다. 전남체고 제공

 

어려서부터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던 소녀는 별안간 역도에 꽂혔다. 소녀는 스스로 세운 목표치에 도전하고 넘어서는 매력에 푹빠졌다. ‘난초’에서 따온 이름을 지닌 소녀 역사 석란(17·전남체고2)은 진흙 속에 핀 꽃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희망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석란은 지난 10월 열린 2019 전국체전에서 역도 여자 55㎏급 고등부 6위에 올랐다. 아직 국내 최고 선수라고 부르긴 이르지만 석란을 발굴하고 지도한 이정재 전남체고 코치는 “고3을 앞둔 이번 겨울 훈련강도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밝은 표정으로 잘 따라와주고 있다”며 “내년에는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 코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르게 자라왔다”는 데서 제자의 가능성을 봤다.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난 석란은 어머니를 모른채 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집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께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지만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스포츠경향’과의 통화에서 석란은 아버지, 그리고 쌍둥이 여동생과 어린시절 운동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석란은 “아버지와 배드민턴, 탁구, 동생과는 축구를 했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한 태권도는 ‘2품’까지 땄고, 6학년 때는 투포환, 높이뛰기 선수로 대회에도 나섰다”고 말했다.

해남군 대표 선수로 출전한 도내 육상대회는 석란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정재 코치가 석란의 남다른 순발력과 근력, 유연성을 보고 역도 선수로 스카우트한 것. 이 코치는 “운동 선수에게 필요한 영양을 집안 형편상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조금 더 돌봐준다면 좋은 선수가 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석란은 이 코치를 따라 몇 차례 연습삼아 바벨을 들어올리다 역도의 재미에 빠졌고, 고향 해남에서 버스로 한시간반 떨어진 무안의 전남체중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연습장을 함께 쓰는 전남체중-전남체고를 다니면서 1~2주에 한번꼴로 집에 돌아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신체가 성장함에도 기록이 정체될 때 석란은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올해도 허리가 아파 잠시 기록이 정체된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힘이 되는건 가족이다. 함께 역도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지금도 전남체고에서 함께 선수로 뛰는 ‘1분 차이’ 쌍둥이 여동생 석향(17)은 든든한 동반자다. 석란은 “향이와 평소 바벨을 드는 자세, 운동할 때 부족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며 “집에 돌아가면 코인노래방을 함께 찾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이”라고 말했다. 석향 역시 올해 전국체전 여자 59㎏급 고등부 5위를 기록한 기대주다. 어려운 형편 속에도 “한 번 선수로 시작했으면 포기하지 말고, 부상없이 지내야 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아버지도 석란의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존재다.

이 코치를 비롯한 전남체중·고의 역도 지도자들은 석란에게 때로는 보약을 지어주고 운동화도 선물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이 코치는 “석란은 다른 과목 선생님으로부터도 나쁜 소리를 듣지 않는 착한 선수”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좋은 선수로, 지도자로 생활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석란도 “당장 내년 전국체전에서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며 “부상당하지 않게 몸관리 잘하고 또 포기하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눈 앞의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들어올렸을 때의 기쁨을 사랑하는 소녀는 오늘도 자신 앞의 한계를 번쩍 이겨내며 스스로 세운 포부처럼 성장하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