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인이 지난 13일 현대캐피탈 구단 클럽하우스인 천안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코트에서 쌓아 놓았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천안 박민규 선임기자

 

전광인(28·현대캐피탈)은 2019년, 여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이적한 새 팀 현대캐피탈에서 자신의 프로 데뷔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맛봤다. 무릎 부상을 안고서도 우승에 대한 집념을 발휘해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라는 근사한 훈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환희를 만끽할 새도 없이 수술대에 올랐다. 고질적인 왼무릎 부상을 떨치기 위해 무릎 연골을 깎아내는 수술에 돌입했다.

시즌 복귀를 위해 짧지만 힘겨운 재활의 시간을 거쳤다가,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아들을 얻는 경사도 얻었다. 기쁜 마음으로 새 시즌을 맞이했지만, 이번엔 소속팀의 성적에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디펜딩 챔피언’ 현대캐피탈은 2019~2020 V-리그 남자부 2라운드가 진행중인 14일 현재 4승4패, 승점 11점으로 5위에 처져있다. 하지만 전 시즌 팀 적응에 애를 먹었던 전광인은 이제 팀의 고참들과 신예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팀의 반등을 자신하고 있다. 지난 13일 현대캐피탈 구단 클럽하우스인 충남 천안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전광인은 어린 선수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고참 형들과 함께 “오래도록 배구하고 싶다”는 소망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었다.

■무릎 수술 그 이후

전광인은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을 마친 뒤 3주만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경기 때나 훈련 때 수백번 점프를 해야 하는 배구 선수에게 무릎은 부상에 쉽게 노출되기 쉬운 부위이긴 하지만, 전광인의 경우 특히 불안정한 착지 자세가 부상 원인으로 꼽혔다. 스파이크를 한 뒤 양발이 동시에 착지해야 충격이 분산되는데, 전광인은 계속 왼발이 먼저 땅에 닿았다. 전광인은 “아무래도 치기 어렵게 토스된 공을 스파이크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보니 왼발 먼저 착지하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고, 예상대로 시즌 전 복귀에는 성공했다. 다만 프로 데뷔 후 처음 받는 수술의 여파가 작지는 않다. 수술보다 더 힘들다는 재활의 시간도 견디기 어려웠다. 재활을 경험한 여타 선수들처럼 전광인도 “‘이맘 때쯤 이 정도 좋아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착지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보니 밸런스도 조금 흐트러졌다. 전광인은 “왼발로 먼저 착지하려고 해도 저도 모르게 전과 다른 자세로 착지하게 되더라. 그러다보니 시즌 초반에는 부상 이전만큼 공을 때리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코트에 나설 수 있다는 게 전광인에게는 기쁜 일이다. 전광인은 “지금 컨디션은 한창 좋을 때의 70%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점점 좋아지고 있는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직 수술 부위가 신경쓰이는 듯 전광인은 아직 강한 서브를 때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전광인은 올 시즌에도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과 수비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전광인이 지난 13일 현대캐피탈 구단 클럽하우스인 천안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코트에서 쌓아 놓았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천안 박민규 선임기자

 

■이제는 팀의 ‘부주장’으로

본인은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동료들의 부상에 전광인은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개막 전 어깨 부상을 당했던 외인 공격수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는 발목 부상을 당해 2경기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전광인과 함께 공격에 물꼬를 틔워야 할 문성민도 최근 발목을 다쳤다.

전광인은 “비시즌 동안 다들 열심히 훈련했는데, 부상 탓에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고, 성적마저 좋지 않은 팀 상황을 두고 전광인은 “저뿐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성적뿐 아니라 경기력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에서의 두번재 시즌. 그만큼 전광인에게 동료 선수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전 시즌에는 스스로가 팀에 녹아드는 데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지난해 컵 대회 경기 중 작전시간 때 최태웅 감독이 “전광인, 너 여기 왜 왔어”라고 일갈한 장면은 내내 회자되기도 했다.

새로운 시즌을 맞아 최 감독은 전광인에게 “선배들과 팀을 함께 이끌어달라”는 부탁을 새로이 했다. 전광인은 “(문)성민이 형이 부상을 당하기 전에도, 감독님은 저에게 형과 함께 팀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하셨다”며 “성민이 형이 경기를 못뛰는 지금, 제가 그 자리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지만 다독거리면서 좋은 말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팀의 ‘부주장’이 됐을 정도로 올해 전광인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현대캐피탈은 여오현 플레잉코치를 비롯해 문성민, 신영석 등 베테랑들이 주축을 이룬다. 다른 주전급 선수인 박주형, 최민호도 전광인보다 나이가 많다. 그만큼 주전들에 가려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도 적지 않다. 팀의 ‘중간급’ 선수인 전광인이 그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전광인은 요즘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 밝은 표정으로, 파이팅넘치는 모습을 보이라”고 말하는 데 신경을 쏟고 있다. 최태웅 감독이 최근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자주 하는 말과도 같다. 전광인은 “감독님이 평소에 강조하셨던 부분이다. 밝은 분위기에서 경기해야 잘 안풀릴 때도 과감한 플레이가 나오고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며

전광인은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만큼, 형들로부터 받는 영향도 많다고 했다. 전광인은 “형들을 보며 ‘나도 저 나이 때 코트에서 저렇게 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들과 함께 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느끼고 있다. 2013~2014시즌 신인왕을 수상했던 전광인은 일찍이 성인 대표팀에 합류해 문성민, 신영석 등 대표팀 단골 선수들과 인연을 이어왔다. 다시 한 번 팀의 우승을 바라는 건 “많이 배웠던 형들과 다시 한 번 우승한다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내년 1월 예정된 2020 도쿄 올림픽 남자배구 아시아 예선도 ‘형들도 미처 경험하지 못한 올림픽 무대를 함께 밟는다’는 목표를 이룰 기회다.

올해 새로이 생긴 목표는 또 있다. ‘오래오래 꾸준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가 되는 것’. 나이를 먹어서도 기량을 유지하는 형들을 보면서도 목표를 잡았지만, 시즌을 눈앞에 둔 올해 9월초 태어난 아들 루안이를 보면서도 목표를 구체화했다. 전광인은 “아직 아들을 낳은 후 아내가 경기장에서 오지는 못했다. 정규시즌이 반환점을 돌면 그 때는 경기장을 찾은 아들 앞에서 제 플레이를 보여줄 순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전광인은 지난 시즌 5·6라운드쯤, 아내에게 “우승할 때까지 집에 못갈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숙소 생활을 자청하면서까지 우승하고픈 열의에 던진 얘기를 아내가 생각보다 흔쾌히 받아줬다고 한다. 전광인은 “아내가 올 시즌에도 ‘경기한 다음 날 쉬라’고 한다”며 “집안일을 거의 도와주지 못하는데도 저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이제 전광인의 눈은 한달 보름여 남은 2019년과, 해가 바뀌어도 이어질 V-리그를 향하고 있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전광인은 이르면 올 시즌이 끝난 뒤 군에 입대할 생각이다. 전광인은 “아직 구단과 조율하고 상의하고는 있지만 일단 올 시즌 후 입대를 고민하고 있다”며 “요즘 군 복무 기간이 짧아졌다고 하더라. 한 시즌만 쉬고 바로 팀에 복귀할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팬들과 잠깐의 이별을 앞두고 치를 수 있는 마지막 시즌, 팀은 불안하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전광인은 반등을 자신하고 있다. 전광인은 “선수들이 비시즌 많은 준비를 해왔다.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맞지만 팀 분위기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며 “반등의 기회는 찾아온다. 그 기회를 우리가 잡을 수 있느냐에 팀의 시즌 성적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천안|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