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5일 1주기… 베네수엘라 혼란 속 중남미 통합도 지지부진


‘21세기의 반미 지도자’이자 ‘사회주의 실험가’를 자처했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숨진 지 5일로 1년이 된다. 지난 1년간 베네수엘라에서는 대선이 실시됐고, 차베스가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한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됐다. 한쪽에서는 저소득층에 미친 차비스모(차베스주의)의 효과를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반대쪽에서는 ‘차베스의 짝퉁은 가라’며 마두로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게 벌어지고 있다. 생전에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차베스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한 화두다.

차베스가 14년 집권을 끝내고 병으로 숨진 지 1년이 지난 지금 카라카스를 비롯한 베네수엘라의 여러 도시에서는 마두로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가 연일 진압경찰과 충돌을 벌이고 있다. 올 들어 시위는 차베스 사후 최대 규모의 폭력사태로 변질됐다. 마두로는 야권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야권 지도자이자 마두로의 최대 숙적인 엔리케 카프릴레스 미란다 주지사는 “시위 참가자를 먼저 석방하라”며 거부하고 있다. 엘우니베르살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친정부세력과 반정부세력의 시위와 충돌, 시위대와 진압경찰 간의 충돌 등으로 올해에만 18명이 숨졌다.

중산층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살기가 팍팍하다고 아우성이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56.2%에 이르렀으며, 우유와 화장지 같은 기초 생필품마저 부족해졌다. 국가가 가격 인상을 통제한 가전제품을 사러 사람들이 몰리자 군인들이 질서 유지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2년의 물가상승률도 결코 낮지 않았지만(21.1%) 새 정부 출범 후 2.7배나 뛰었다. 지난해 약 2만4700명이 살인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등 치안상황도 불안하다. 지난 1월 전 미스 베네수엘라가 사망한 뒤 국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 빈민들은 차베스를 그리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차베스라면 나라가 이 상황에 처하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차베스 집권하에 카라카스 빈민가의 수도와 전기 서비스가 개선됐고, 인터넷 전화선에 케이블카까지 들어섰다. 사회학자 마리클렌 스텔링은 “하위계층은 차베스식 사회주의와 정치적·상징적·종교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그의 정책 아래 100만명이 문맹에서 벗어났다. 베네수엘라의 절대빈곤층 비율은 2004년 53.9%에서 2012년 25.4%까지 줄었다.

야권도 이런 차베스의 업적까지 비판하지는 못한다. 미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댄 비튼은 “현재 야권의 전략은 마두로 정권을 차베스의 ‘저급한 모조품’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생전 ‘중남미 통합’을 외치던 차베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국내 서민들과 중산층도 통합하지 못했다. 삶이 더욱 힘들어지면 서민들까지 반정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카라카스에 사는 조니 카르타헤나(18)는 “상황이 (지금보다) 더욱 악화되면 아무도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남미 대륙 전체에서도 차베스의 흔적은 점차 지워지고 있다. 2004년 시작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 결성을 주도하는 등 차베스와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중남미에서 활발히 형님 노릇을 했다. 그러나 차베스 사후 중남미 대륙의 통합 열기는 식었다. 각국의 역사 배경과 인종 구성,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데도 차베스는 19세기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거론하며 ‘중남미 통합’을 외쳤다. 

하지만 ‘석유달러’를 앞세운 차베스의 지원이 사라지자 ALBA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공동체들의 움직임은 미미해졌다. 차베스 없는 베네수엘라 대신 이제 중남미를 이끄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카스트로가 집권하던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중남미의 반미주의 색채는 점차 옅어지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곧 칠레 대통령으로 돌아올 미첼 바첼레트가 주목받는 중남미에서는 이제 차베스식 반미 사회주의 대신 실용주의 좌파가 대세가 되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