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대표적인 소통 수단이면서 여러 루머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SNS상의 루머는 근거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 전파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최근 “전북 익산시의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에 할랄 식품 단지가 들어선다”는 골자의 루머도 그랬다. ‘할랄(halal)’ 식품이란 무슬림들이 경전 코란의 원칙에 따라 가공한 식품을 뜻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이 인증을 거친 식품에 별도의 할랄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으며, 지역 무슬림들은 주로 할랄 인증이 붙은 식품을 구매한다.

이 루머는 무슬림의 국내 대거 유입에 대한 반감을 품은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널리 퍼졌다. 익산 인근 전북 지역에 이런 루머가 퍼지자,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1일 해당 내용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를 이례적으로 가졌다. 루머 내용과 이에 대한 농식품부의 해명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전북지역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지난달 17일 익산시청 앞에서 국가 식품클러스터 내 할랄식품 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익산신문 제공



■ “2016년까지 5500억원을 들여서 익산에 할랄 식품 단지를 조성한다. 이는 충분한 검토 없이 대통령 중동순방 성과 창출을 위해 졸속 추진하는 것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 50만평(약 165만㎡)을 할랄 식품기업에게 50년간 무상임대하고 정착지원금을 1인당 150만원씩 지원한다.”

농식품부가 익산에 조성중인 국가식품클러스터가 할랄 식품 단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 루머의 핵심이다. 농식품부는 올해 말까지 클러스터 부지 조성을 완료하고 이중 기업지원시설 준공은 오는 7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국가식품클러스터는 할랄 식품 단지로 조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선 클러스터 중 공원·녹지 등을 제외하고 식품기업들에게 돌아갈 산업용지는 46만평(약 152만㎡) 수준으로 루머에서 언급된 50만평에 미치지 못한다. 5500억원은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비용 5535억원에 준한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완대책으로 추진된 것이다. 토지를 조성하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부채 및 유동성 문제에 부딪혀 착공이 2014년에 이뤄졌을뿐 애초에 할랄식품 단지를 염두에 두고 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 ‘할랄 식품 수출’에 공을 들여왔다.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할랄식품단지 조성을 검토해온 것도 맞다. 다만 앞서 설명했듯 클러스터 전체를 ‘할랄 식품 단지화(化)’하는 것은 아니다. 배치 계획상 클러스터는 미래전략식품존, 글로벌식품기업존, 연관산업존 등 5개 구역으로 나뉘며 할랄 식품 단지는 이중 일부에 불과하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하반기 할랄 식품 수출 기업 및 할랄 관심 기업 대상으로 클러스터 입주 수요를 조사한 결과, 단 3개사만이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들이 원하는 용지 규모를 합하면 1250평이다. 전체 산업용지 46만평의 0.27%에 불과하다. 농식품부는 “아직 단지 조성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국인 기업에 산단 용지를 50년간 무상임대한다는 것은 ‘외국인투자촉진법’ 상으로는 가능하다. 정착지원금 1인당 150만원은 국가식품클러스터 입주기업에 전북도(100만원)와 익산시(50만원)가 6개월간 지급하는 고용지원금이다. 그러나 클러스터 입주 계약을 체결한 외국계 기업 6개 중 중동 등 이슬람 국가의 기업은 없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지난해 10월16일 오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물리아 호텔에서 한국음식의 무슬림시장 수출 확대를 위해 열린 ‘2015케이-푸드페어, 자카르타’ 행사에 참여한 현지 언론인들이 KMF(한국이슬람교중앙회, Korea Muslim Federation)의 인증을 받고 전시 된 할랄 라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카르타 | 사진공동취재단



■ “올해 할랄전용단지가 완공되면 할랄 도축장이 건립될 예정이며, 3년 안에 이맘(이슬람 지도자) 100만명과 무슬림 도축인 7103명이 1차 동시 입국 예정이다. 무슬림 사원과 무슬림병원, 학교, 아파트 등을 신축할 계획이며 무슬림 집단 거주지가 형성돼 테러의 배후지가 된다.”

우선 ‘할랄식품 기업’에 대한 정의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할랄식품 기업은 중동 및 이슬람 국가의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할랄 마크가 붙은 채 판매되고 있다. 국내와 비이슬람권에서 판매중인 초코파이의 마시멜로우는 돼지에서 추출한 성분이 포함돼 있다. 돼지고기와 관련 성분을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대로 팔 수 없어 오리온은 소를 비롯한 대체재를 찾아 초코파이를 만들어 할랄 인증을 받았다. 오리온은 할랄식품만을 취급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할랄 음식을 만드는 셈이다.

오리온뿐 아니라 다른 식품 기업들도 이슬람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 대체제를 사용한 과자, 라면들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농식품부는 이같은 할랄 인증식품을 더 원활히, 더 많이 수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일부 이슬람 국가들이 할랄 인증 규정을 보다 까다롭게 개정하려는 중이라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상태다. 정부는 국내에서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가 인증하고 있는 할랄 기준이 해외에서도 바로 인증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슬람 국가들의 할랄 인증 변화 정보를 식품기업들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정부의 할랄식품 정책은 ‘국내 가공식품이 어떻게 할랄 인증을 받아 이슬람 국가에 더 많이 수출토록 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슬람 국적의 식품 기업을 국내에 유치하고 이에 따라 무슬림들을 유입시키려는 것은 현재 정부 대책 중 후순위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할랄식품 단지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 이맘 100만명과 무슬림 도축인 7103명이 일할 장소가 없는 한국에 발을 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앞서 밝혔던 입주 계약을 체결한 기업 중 이슬람 국가의 기업은 없다. 이슬람 국가 기업이 들어오므로 무슬림이 국내에 대거 온다는 것인데 기업 자체가 들어올 계획이 없다.

정부가 할랄 인증 도축장을 별도로 조성하려는 것은 맞다. 국내 기업들은 할랄 인증 받은 가공식품을 수출할뿐, 할랄 인증을 받은 쇠고기·돼지고기 등 육가공품은 생산·수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직 정부가 세우려는 도축장은 1곳이다. 이 도축장은 코란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도축을 해야하는데 필요한 도축 인원은 3명이다. 그나마도 이 도축장은 클러스터에 들어설 계획이 없다. 도축장 부지는 공모를 통해 선정할 계획이라, 전북도와 도내 업체가 공모에 참여하지 않으면 전북 지역에 도축장이 들어서지 않게 된다. 단 3명의 무슬림 도축 전문가가 무슬림 집단 거주지와 테러 배후지를 만들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지난 13일 터키 이스탄불의 자살폭탄 테러 현장인 술탄아흐메드 광장에서 한 남성이 추모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시리아인들은 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고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난간에는 터키와 시리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스탄불 | AFP연합뉴스



■ “비무슬림국가에서 할랄산업에 세금을 투입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할랄식품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4인의 무슬림 종사자와 무슬림 할랄 관리자를 임명해야 한다. 할랄 방식의 도축은 기절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농식품부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과 호주를 비롯한 비무슬림 국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할랄 식품 시장 진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할랄 도축장을 설치할 때 설비를 지원하고, 할랄 인증시 필요한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공 식품이 할랄 인증을 받으려고 할 때 품목 당 약 100만원이 소요되고 있다. 할랄 인증을 수출국에 직접 받으려면 항공료 및 현지 컨설팅 기관의 컨설팅 비용을 포함해 품목당 2000만원이 든다.

할랄인증을 받기 위해 사내에 무슬림이 필요하다면 앞서 언급한 국내 식품 기업들도 무슬림을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했다. 국내 식품 기업 중에서는 할랄 인증을 위해 무슬림을 별도로 채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랄식품을 제조한다는 것은 코란에서 허용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재료만 달라질뿐 제조공정에서 무슬림을 의무적으로 투입할 필요도 없으므로, 할랄식품 수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내에 무슬림이 늘어나야할 이유는 없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의 경우 ‘동물을 기절시키는 할랄방식 도축’을 사용한다고 농식품부는 밝혔다. 국내에서는 볼트를 소나 돼지의 두개골에 맞춰 기절시키는 데, 말레이시아의 경우 공기압을 가축의 머리에 쏘아 기절시킨다. 이를 통하면 두개골이 손상되지 않아 할랄 방식을 따르면서도 가축은 기절시킬 수 있어 동물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농식품부는 국내에 할랄 도축장을 건립할 때 동물보호법에서 허용하는 방식을 사용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이슬람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 조성된 마스다르 시티 내 태양광 발전소.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왜 이런 소문이 퍼졌을까.

이슬람교에 대한 반감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포가 소문을 퍼뜨리게 한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 터키 이스탄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 한동안 테러에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지역들에서도 IS가 준동했다고 주장한 테러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때문에 한국도 IS의 표적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국내에서도 조금씩 번지고 있다. 이같은 불안에 이슬람교의 교세 확장을 원치 않는 개신교계에서 반대 여론을 확장해 나갔다.

이슬람과 할랄 식품·할랄 식품 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도 이를 부채질했다. IS가 활개치는 시리아나 그 외 무장세력들이 활동하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도 이슬람 국가고,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들이 중동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전 방문했던 UAE, 카타르 등의 자원 부국도 이슬람 국가다. 많은 사람들이 잊는 사실 중 하나는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네시아라는 사실이다. ‘무슬림=IS’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만이 할랄 식품을 찾는다는 이야기도 통념일뿐이다. 지난해 10월 방문했던 자카르타에서도 현지인들은 본인을 ‘매주 사원을 찾지는 않는 독실하지 않은 무슬림’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할랄 인증 식품만을 찾아 먹었다. 할랄 식품을 먹는다는 것이 ‘교리에 대한 순종’일뿐 아니라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할랄 식품은 코란 내용에 따라 가공했으며 그 기준이 엄격한만큼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이라는 이면도 있다.

할랄 식품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 무슬림이 늘어난다는 가정은 ‘할랄 식품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국내 식품기업들은 이미 할랄 인증을 받은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할랄 식품 생산을 늘리려면 현재 가동하고 있는 공장에 생산 설비를 늘리는 것이 클러스터라는 별도의 공간에 새로 공장을 세우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할랄 식품 시장에 총 15억달러분의 할랄 식품을 수출하려는 목표를 잡고 있다. 할랄 식품 시장 전체 규모가 2013년 기준 1조2920억달러임을 본다면 극히 적은 규모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