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영국 NGO ‘환경정의재단’ 스티브 트렌트 사무총장

▲ 한국어선 불법 행위 EU 고발
‘불법예비어업국’ 지정에 앞장


▲ 한국의 개선노력도 적극 지원
지난달 ‘지정 해제’ 이끌어내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환경정의재단(EJF)과 한국 정부의 관계는 묘하다. EJF는 한국 선적 어선의 서아프리카 불법 어업 실태를 유럽연합(EU)에 고발했고, EU는 2013년 11월 한국을 불법 예비어업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지난달 한국이 불법 예비어업국 오명을 벗어나기까지 한국과 EU 간 다리를 놓은 것도 EJF였다.

“불법 어업국에서 벗어나는 기술적·외교적 해결책은 이제 한국의 자산이 됐다.” 스티브 트렌트 EJF 사무총장(사진)은 1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불법 어업 근절 노력이 성공적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 어선위치추적장치(VMS) 설치를 의무화하고 조업감시센터를 운영한 뒤 “서아프리카 해안의 불법 어업이 급감했다”고도 했다.





EJF는 2000년 설립 이래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을 해왔지만, 특히 서아프리카 해안 불법 어업 감시에 힘을 기울여왔다. 트렌트는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저개발국은 해안에서 잡은 어류를 섭취해야 하지만, 불법 어업으로 어획량도 줄고 어민들이 죽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단체들이 나서지 않아 EJF가 이 일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트렌트는 “EJF가 2010년대 들어 발견한 서아프리카 해안 불법 어선의 약 70%는 한국 선적 어선이었다”고 말했다. EJF가 불법 어업 실태를 촬영한 영상을 EU에 넘겼고, EU는 불법 예비어업국 지정 절차에 착수했다. 그는 “위성을 통한 감시가 아니라 현장을 직접 촬영했기에 우리의 증거는 신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위로 보면 한국 정부가 불법 예비어업국이 된 뒤 EJF에 반감을 갖게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불법 예비어업국 지정 해제를 위해 한국 정부가 먼저 EJF에 손을 내민 것은 이례적이었다. 해양수산부와 EJF는 지난해 6월 상호 정보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EJF는 한국이 어떤 방법으로 지정 해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자문했다.

트렌트는 지정해제가 결정된 지난달 EU 관계자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인사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트렌트는 둘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인(honest broker)’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며 “불법 어업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졌고,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불법 어업 감시를 본격화한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라고도 말했다. EJF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불법 어업하던 한국 어선이 1년6개월 새 80% 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U가 한국을 불법 예비 어업국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해역에서 조업하던 스페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EU가 자체적으로 충분한 자료를 확보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도 한국처럼 불법 어업을 일삼는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지금은 불법 어업 퇴치에 적극적인 국가가 됐다”고 평했다.

트렌트는 EU가 지난달 태국을 불법 예비어업국으로 새로 지정하며 “태국 정부에 ‘지정 해제를 위해서는 한국을 본받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지정 해제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불법 어업을 계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윤승민·사진 정지윤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