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새벽 4시쯤 인도 델리 부근 카주리카스 마을의 경찰서에 한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이웃집 남성을 전날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한 뒤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자수를 한 남성은 올해 36세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신고해도 그대로 풀려나거나 딸의 명예만 더럽혀질 것이라 생각해 스스로 보복한 것이다.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오히려 궁지로 모는 인도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불러온 이 아버지의 복수극은 인도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남성의 딸은 석 달 전 이웃에 살던 옴카르 싱(45)이라는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까지 했다. 딸에게 그 사실을 들었지만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 신고해봤자 범인은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_ AP통신



2012년 12월 델리 여대생 버스 성폭행 뒤 인도에서는 성폭행범에게 최대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형량을 높였고, 정부는 성범죄에 강력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폭행범이 죗값을 치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난 5월에는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 사촌 자매가 성폭행당하고 살해됐으나 경찰이 신고를 받고도 범인들을 체포하지 않아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신고 후 피해자들이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성폭행 건수는 3만3707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정을 아는 아버지는 딸을 대신해 피해자를 단죄하기로 마음먹고, 두 달여 동안 계획을 세운 뒤 싱을 불러 대화를 나눴다. 싱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유력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면 성폭행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아버지는 싱을 살해한 뒤 자수를 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이 아버지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성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인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인디안익스프레스 등은 지적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