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위대 충돌 없고, 개입 땐 경기 침체 심화 우려도

잉락 친나왓이 태국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반탁신·친탁신 세력은 각각 9일과 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우려했던 시위대 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고, 정국도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야당과 반탁신계가 기대하고 있는 군부의 움직임은 이번에도 없었다. 쿠데타를 벌여 탁신 친나왓을 물러나게 했던 2006년과 현재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총리였던 두 남매의 퇴임 과정은 달랐다. 탁신은 2006년 4월 푸미폰 국왕을 만난 뒤 총리 사임 의사를 발표했지만, 한 달여 만에 정치휴식을 마치고 총리직에 복귀했다. 말을 바꾸면서까지 권력을 놓지 않은 탁신의 행적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잉락은 대규모 시위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위법·편법적 움직임을 피해 빌미를 주지 않았다. 지난 7일 헌법재판소의 해임 결정도 즉각 받아들였다.


시위대들도 충돌 양상을 보이지 않아 군부가 사회 혼란을 빌미로 개입할 여지는 줄었다. 지지자가 많은 친탁신계는 오는 7월 총선 실시를 기다리면 되고, 반탁신계도 잉락 해임이라는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 등 반탁신 시위대 지도부는 잉락의 퇴진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새 총리 지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총선 없이’ 총리를 새로 세우자는 주장에는 군부도 손을 들어주기가 힘들다. 반탁신계가 장악한 헌재 등 사법부도 새 총리 지명에 나서는 식의 ‘초법적 개입’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더네이션 등 태국 언론들은 전했다.

경제 상황도 군부가 움직이기엔 부담스럽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9%에 그쳤다. 당초 올해 4%대의 경제성장을 전망했던 중앙은행도 3월 들어 올해 성장 전망치를 2.7%로 낮췄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축소에 바트화 가치가 떨어진 데다, 전년 대비 수입이 20% 늘었던 관광산업 성장세도 대규모 시위 이후 한풀 꺾였다. 세계은행이 2월 발간한 태국 경제 보고서를 보면, 태국 입국 관광객수가 지난해 1~3분기에 전년 대비 22% 늘어난 반면, 시위가 있던 지난해 4분기 관광객 증가율은 10.7%에 그쳤다. 침체기 태국 경제를 이끌던 관광산업이 대규모 시위로 타격을 받았는데, 군부가 적극 개입하면 경기가 더 침체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군부를 움직일 왕권의 영향력도 줄었다.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해온 푸미폰 국왕(86)은 건강이 나빠져 최근 몇 년 새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녀들도 지지세력이 달라 왕권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친탁신계, 시린톤 공주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각각 받고 있다. 이병도 한국외대 교수는 “왕권이 유혈 사태 등 대규모 사회 혼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현재 사태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미 여러 차례 충돌을 겪은 친탁신·반탁신계 모두 충돌로 인한 피해를 원치 않는다”며 “지난해 말 계엄령까지 내려진 와중에도 결국 충돌은 격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