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6일 과천 선관위 20대 대선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통합관제센터에서 폐쇄회로(CC)TV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일 코로나19 확진자 및 격리자 대상 20대 대선 사전투표의 부실관리 논란에 대해 “불편을 드려 안타깝고 송구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본투표에서는 이런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선관위가 고장이 난 것 아니냐”며 비판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은 중앙선관위뿐 아니라 정부·여당에도 화살을 돌리며 공세 수위를 올렸다.

선관위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이번 선거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만큼 높은 참여 열기와 투표관리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해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며 “불편을 드려 안타깝고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드러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면밀하게 검토해 선거일에는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다만 “이번에 실시한 임시기표소 투표 방법은 법과 규정에 따른 것이며,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인의 참관을 보장하여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박찬진 선관위 사무차장은 이날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사전투표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지적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장은 “중앙선관위에서 시·도 위원회 실무자들 의견을 한 번 더 들어 수렴했고, (확진자·격리자 투표 관련) 2안을 만들어서 내일 10시 긴급위원회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최적의 방안인지 찾아서 결정되면 결정된 내용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일선에서 투표 관리하는 직원들에게 알리겠다”며 “3월9일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차질 없이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날 행안위 현안보고에서 9일 본투표일 문제 재발방지를 위해 △확진·격리자를 위한 임시기표소를 별도 설치하지 않고, 일반 유권자 투표 종료 후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방안 △임시기표소를 설치하되 투표 용지 보관함을 따로 설치하는 방안 등 2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여야 의원들은 임시기표소 설치 없이 유권자 투표 종료 후 투표하는 방안으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관위는 7일 전원회의를 거쳐 본투표일 방침을 확정해 발표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5일 치러진 확진자 및 격리자 사전투표에서는 기표한 투표용지를 바구니 등에 담아 투표함으로 옮기는 방식을 두고 현장 유권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투표용지를 담을 봉투에 이미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들어가 있는 사례도 나왔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사무원과 유권자 사이 충돌로 투표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보수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부정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선관위가 그 경위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본투표에서는 이런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확진자와 격리자의 투표권이 온전히 보장되고 공정성 논란이 생기지 않게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도 선관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 회견에서 “지적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은 SNS에 선관위의 입장문을 공유하며 “이것을 해명과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나. 어디가 고장난 것인가”라고 적었다. 전날 국민의힘 의원들에 이어 이날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들도 경기 과천시 선관위를 항의방문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격한 언사를 동원하며 선관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로 드러났다”며 “코로나 확진·격리자분들의 사전투표에서 발생한 혼선이 그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한 달 전부터 이분들의 ‘투표할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누차 말씀드렸다”면서 “그럼에도 선관위는 혼란과 불신을 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는 이날 수도권 현장유세에서는 “사기꾼들 오래 상대해봐서 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하시는 보수층을 분열시키기 위한 작전”이라며 한층 공세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사전투표 논란이 그간 일부 강성 보수층의 부정투표 주장과 겹치면서, 지지자들의 선거 이탈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윤 후보가 현장유세에서 “철저히 감시하고, 정권이 바뀌면 경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겠다. 3월9일날 한분도 빠짐없이 투표해주시라”고 당부하는 등 본투표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선관위뿐 아니라 민주당에 책임을 돌리며 보수층 표심을 끌어모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권영세 선대본부장은 이날 확대선대본 회의에서 “중앙선관위원 7명은 대통령과 민주당, 대법원장이 추천한 친여성향 위원들”이라며 “사전투표 첫날 특정당 상징색(파란색) 장갑을 끼고 투표관리를 시작할 때부터 불안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이 같은 공세로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상호 총괄선대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이 정부 무능을 강조하려 과도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정치선동 측면도 있고, 사후 부정선거 시비를 걸 근거도 만들겠다는 의도도 읽혀 불온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전투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불편을 입으신 분들에게 죄송하고, 본투표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관위는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 결과가 초박빙으로 나타날 경우 사전투표 문제를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이 격화하며 극한의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진용·윤승민 기자 sim@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