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학로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 | 240쪽 | 2만2000원

1787년 10월, 한양에서 남인 유생 여럿이 한 집에서 천주교 서적을 읽다가 발각됐다. 그 유생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다산 정약용이었다. 그들이 모인 집은 성균관 근처, ‘조선의 대학로’ 격인 반촌(泮村)에 있었다.

반촌은 대학로와 겹쳐져 있다. 다만 지금의 대학로는 일제가 세운 경성제국대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면, 조선의 반촌은 근처에 있던 성균관 때문에 불린 이름이다. 한양의 선비와 유생들은 반촌에 모여 당대의 지식을 교류했다.

책은 반촌에 살던 반인(泮人)들에 주목한다. 반인들은 성균관에서 잡무를 맡던 일종의 공노비였지만, 유생이나 관료를 하숙생으로 받아들여 돈을 벌기도 했다. 반인의 업무 중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을 모시던 문묘 관리도 있었다.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문묘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그 때문에 반인은 유생이나 관료가 맘대로 부리지 못했다. 반인이 다른 노비를 부리기도 했다.

성균관 유생에게는 3년에 한 번, 한 번에 33명을 뽑는 문과에 급제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반인들은 이런 유생들을 뒷바라지한 뒤 유생이 과거에 급제하면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반촌에서는 대개 과거시험 응시자들이 묵었으므로, 반인은 과거시험 정보를 빼돌려 부정행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반인은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결속력과 유대감, 의협심이 강했다. 반인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자원군으로 참전했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일본 병사들에 의해 후원으로 끌려간 고종을 호위하기도 했다.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 직후 자결해 의병 활동의 불을 지핀 박승환도 반인 출신이다. 책은 여러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던 반촌과 반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다뤘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