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이가 20m에 이르는 폭 1.2m의 스테인리스가 길처럼 펼쳐져 있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89)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설치한 신작 ‘관계항-하늘길’(2025)은 제목대로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다. 공간을 체험하는 이에게 하늘에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우환이 고령에도 호암미술관에 상설 설치 신작을 지난 10월 말부터 선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외부 공간인 옛돌정원에 ‘관계항’이라는 공통된 이름을 가진 설치 작품 3점이 들어섰고, 전통정원 희원에는 ‘실렌티움(묵시암)’(2025)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관계항-만남’(2025)은 지름이 5m에 이르는 대형 스테인리스 고리를 세운 작품인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리를 사이에 두고 자연석 2개가 마주 앉을 예정인데, 이우환은 “내가 돌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돌이 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돌의 ‘부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돌이 비운 자리에는 관람객이 서서 고리를 드나들며 만남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관계항-튕김’(2025)은 1970년대 구상한 형태를 이번에 실제 작품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스테인리스 철판이 밖으로 튕겨 나갈 듯 둥글게 휘어져 긴장감을 주는 한편, 옆에 놓인 자연석과 바닥에 깔린 흰 자갈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실렌티움(묵시암)’은 기존에 찻집으로 쓰이던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재구성한, 실내 작품 3점과 야외 설치 1점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다. 실렌티움(Silentium)은 라틴어로 침묵을 뜻하며, 묵시암(默視庵)은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실내 작품은 붉은색과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바닥의 원과 벽의 사각형으로 표현해낸 그림, 자연석 주위에 목탄으로 원 모양 그림자를 그린 설치 작으로 구성돼 있다. 두 점의 그림은 변화하는 색을 통해 생명력과 조화를 나타낸다. 자연석 주변에 드문드문 끊긴 선으로 그려진 돌 그림자는 자연과 상상력이 겹치는 지점을 나타낸다.

실렌티움(묵시암)의 실내 공간은 적은 인원만 들어가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도록 구성돼 있다. 입구에는 3.2m×3.7m 철판에 가만히 올라탄 자연석이 있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철판은 독특한 모양을 띠며 산화돼 있다.
호암미술관은 “2003년 회고전 이후 이우환의 예술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국제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의 예술 세계를 수도권에서 상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관람료는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을 포함해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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