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대형 고분은 대부분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이다. 무덤에 주인공과 부장품을 넣는 나무 덧널을 놓은 뒤 그 주변에 돌을 쌓은 형태다. 그 이전 형태의 무덤은 돌을 쌓지 않은 목곽묘(덧널무덤)다.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흔적을 뚜렷하게 지닌 무덤이 새로 발견됐다. 무덤 주인은 금동관을 쓴 30대 최상위 신분의 장수로 추정되며, 장수와 함께 순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함께 묻혀 있었다. 이번 발굴은 신라 무덤구조 변화와 장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20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발굴조사 현황을 이같이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황남동 1호 목곽묘는 2018년 시작된 황남동 120호분 발굴조사 과정에서 120호분 아래 발견된 목곽묘 6기 중 하나다. 적석목곽분 아래 또 다른 목곽묘가 중첩된 ‘무덤 아래 무덤’ 구조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또 신라의 무덤은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했는데, 4세기 말~5세기 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남동 1호 목곽묘는 그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는 무덤으로도 평가된다. 동서 길이가 10.6m, 남북 길이 7.8m로, 낮고 완만한 타원형 봉분의 주변을 즙석(띠 모양으로 얇게 깐 돌) 모양의 호석(둘레돌)이 둘러싸고 있다. 낮고 완만한 봉분은 목곽묘에서, 즙석 형태의 호석은 초기 적석목곽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일제강점기 발굴된 황남동 109호분의 3·4곽에서도 나타나지만, 황남동 1호 목곽분만큼 특징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없었다.

동서 방향 길이가 3.7m인 주곽에서는 금귀걸이와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 치아와 금동관 등이 발견됐다. 치아의 크기와 마모도 등을 바탕으로 주곽의 주인공은 매장 당시 30세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금귀걸이와 금동관, 환두대도의 존재는 주인공이 최상위급 신분의 장수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에 발견된 금동관 파편에는 고구려의 전씨 집안 출토 금동 장식과 신라 금관총 금제 모관에서 볼 수 있는 △·凸 문양이 투조(금속판 일부를 도려내는 기법)돼 있었다. 기존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동관 6점보다 앞서 만들어진, 경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금동관으로 추정된다.
주곽 옆에는 동서 방향 길이 1.7m, 남북 방향 길이 2.7m 부곽이 함께 발견됐다. 부곽에는 바닥에 깔린 말 갑옷 위에 사람 뼈 일부와 사람의 갑옷이 놓여 있었다. 사람의 갑옷은 비늘을 엮어 만든 전형적인 찰갑(札甲)으로, 몸통을 가리는 동찰(胴札)과 허리 아래에 치마처럼 내려오는 상찰(裳札)은 발견되지 않았다. 몸통 부분을 가죽 등 유기질로 만들어 경량화된 갑옷으로, 주곽에 묻힌 주인공이 지휘관급 장수였음을 짐작케하는 요소다. 부곽에 순장된 사람은 4~6세기의 평균 키인 160~165㎝로, 성별은 알 수 없으나 장수를 모신 시종으로 추정된다. 그간 신라에서 순장제가 있었다는 기록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순장 형태를 확인할 자료는 없었다.
사람과 말의 갑옷은 경주 쪽샘지구 C10호 목곽묘에서 함께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C10호에서는 갑옷과 무기류만 발견된 것과 달리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는 금동관 등이 함께 발견돼, 주인공이 정치적 역할까지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황남동 1호 목곽묘의 발굴은 단순히 새로운 무덤을 발견한 것을 넘어 신라의 고분 양식 변천과 고대 신라의 군사·사회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특히 이번에 발굴된 갑옷·투구 일체는 신라 중장기병 연구의 핵심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 현장과 출토된 유물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을 맞아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일반에 공개된다.
- 경주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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