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주민연합 장수 회원 67세 루르데스
콘준토 파우메이라스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면서 직원에게 “콘준토 파우메이라스 주민연합 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직원은 흔쾌히 두 블록 떨어진 곳까지 안내해줬다. 찾아간 곳은 마리아 데 루르데스(67)의 집이었다. 파우마스 은행에서 배운 봉제기술로 인형을 만들어 파는 루르데스는 이날도 집 한쪽 작업실에서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해변 마을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루르데스는 1980년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해 허허벌판 위에 천막을 치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그때 정부로부터 내팽개쳐졌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다가 주민연합 가입을 권고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위해 주민연합이 무엇인지 길거리 연극과 라디오 방송으로 알리고 있었다. 회원이 되려면 매달 3헤알(약 1020원) 정도를 내야 했다. 삯바느질로 살아온 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어떤 이들은 “말만 번드르르하고 돈만 뜯어 갈 것”이라며 말렸으나 루르데스는 망설임 없이 가입했다. “그때 저희는 누구라도 좋으니 도움이 절실했어요. 저부터 참여해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997년 파우마스 은행이 설립되자 누구보다 먼저 은행의 봉제기술 강좌를 들었다. 기술을 배우자 삯바느질보다 훨씬 벌이가 좋은 옷이나 인형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무이자 대출을 받아 원단을 사서 인형을 만들었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파우마스 은행으로 달려갔고, 그때마다 은행은 100~300헤알을 빌려줬다”면서 “언제든 돈을 빌릴 보루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큰 위안과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파우마스 봉제기술학교 자문위원이 되어 자신이 배운 것을 주민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월회비가 아깝다며 만류하던 이들도 지금은 똑같이 지역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불공평하게 느껴진 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이미 제가 낸 회비보다 더 큰 것을 돌려받았습니다. 제 회비가 모두가 잘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면 그것이 더 기뻐요.”
<포르탈레자(브라질)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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