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광현(위)과 두산 린드블럼. 이석우 기자·연합뉴스

 

지난해 11월1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 두산과 SK를 대표하는 에이스의 맞대결은 이날 경기 초반이 아닌 후반부에 벌어졌다. 8회말 1점을 내 4-3으로 앞선 두산은 9회초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을 마운드에 세웠다. 마무리 함덕주가 7회 조기투입돼 1.2이닝을 막은 상황. 시리즈 전적 2승3패로 밀린 두산은 6차전을 무조건 잡겠다는 의지를 담아 린드블럼 카드를 냈다.

첫 두 타자를 삼진처리한 린드블럼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듯 했지만, 시리즈 내내 침묵하던 최정에게 동점 홈런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승부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13회초 한동민의 홈런이 나온 SK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SK가 에이스 카드를 꺼냈다. 13회말 김광현은 팀의 우승을 확정하기 위해 마운드에 섰고, 2루수 직선타에 이어 연속 삼진을 이끌어내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에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선수가 됐다.

지난해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에서 극명한 대비를 이룬 두 에이스가 올해는 정규시즌 최고의 투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지난해에도 린드블럼과 김광현 모두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으나, 팔꿈치 수술 후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김광현이 구단의 ‘관리 모드’ 속에 시즌 도중 휴식을 취해 개인기록에서 손해를 봤다. 그러나 올해는 린드블럼과 김광현 모두 투수부문 주요 개인 타이틀인 다승과 평균자책, 삼진 부문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다.

김광현은 지난달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6이닝 8안타 2실점으로 승리를 따냈다. 6월 초 3연속 ‘7이닝 2실점 이하’ 경기를 하고도 승수를 못쌓았던 김광현은 이날 포함 최근 3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며 국내 투수 중 10승 고지에 선착했다. 삼진도 7개 추가해 이 부문 선두(110삼진)에도 올랐다. 경기 전 삼진 1위에 올라있던 린드블럼(105삼진)을 다시 제쳤다.

린드블럼과 김광현은 최근 한 달간 경기를 치를 때마다 선두가 바뀌는 삼진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다승과 평균자책 부문에서도 김광현이 린드블럼을 추격하고 있다. 린드블럼 역시 최근 3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다승 단독 선두(12승)를 유지하고 있으나 투구 내용도 좋은데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팀 타선 및 불펜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광현이 금방 추격할 수 있다.

평균자책 부문에서 린드블럼(1.95)과 김광현(2.73)의 차이가 조금 벌어져있지만 린드블럼의 1위 수성을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1군 10구단 체제가 성립된 2015시즌 이후 시즌 평균자책 1위기록은 대개 2점대 후반~3점대 초반에서 결정됐다. 타고투저 현상이 완화된 올해는 2점대 중후반에서 평균자책 1위 기록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린드블럼의 평균자책이 오르고, 김광현이 내려갈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부상이 없다면 두 에이스의 자존심 대결은 시즌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규시즌 1위 탈환 꿈을 접지 않은 두산은 지난해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킨 린드블럼을 올해도 꾸준히 내보낼 것이다. 김광현도 올해 매 경기 투구수 및 이닝 관리를 받았지만 로테이션에서 빠진 적은 없다. 만약 두 투수가 세 경쟁부문의 타이틀을 모두 독식한다면 ‘투수 트리플크라운’이라는 개인적 영광도 얻게 된다. 2011년 윤석민(KIA) 이후 끊긴 명맥에 두 투수가 욕심을 낼 법도 하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