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당시 숨진 고 김모군의 동료였던 박창수씨(오른쪽)과  장진성씨(왼쪽)가 지난 23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당시 숨진 고 김모군의 동료였던 박창수씨(오른쪽)과 장진성씨(왼쪽)가 지난 23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금 같은 근무체계라면 김군이 숨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27일 구의역 참사 1주기 추모제 때 많은 시민들이, 아직도 사고에 괴로워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당시 사고로 숨진 김모군의 동료 박창수씨(28)는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사고 당시 김군이 속한 용역업체인 은성PSD 소속으로 스크린도어 안전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는 구의역 사고 소식을 듣고 김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자 ‘오늘 휴무겠지, 김군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고가 기사화되자 충격에 휩싸여 김군의 장례식도 가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당시 김군의 동료들은 용역업체 소속에서 서울메트로 소속의 ‘안전업무직’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사고 당시 김군처럼 열차가 오는지 봐줄 동료 없이 일하는 경우는 없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업무 강도와 중요성에 비해 봉급은 여전히 적고, 정규직들과 급여수준뿐 아니라 급여체계도 다른 ‘무기계약직’ 신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의역 참사의 충격을 여전히 안고 격무에 나서고 있다.

김군의 동료들은 대부분 그 때문에 사고 1년이 지난 뒤에도 언론의 접촉을 꺼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창수씨는 “김군을 추모하고, 사고 충격에 휩싸인 동료들을 시민들이 함께 위로하길 바란다”며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남겨진 김군 동료들의 사고 후 1년간의 삶을 듣기 위해 박창수씨와 또 다른 동료 장진성씨(37)를 만났다. 장씨는 박씨와 달리 사고 당시에는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가 아니었지만 역시 서울메트로의 또다른 용역업체 소속으로 역사 전기 관리를 맡으며 상황을 지켜봤다고 했다. 그 역시 현재 서울메트로 안전업무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지난 23일 이들을 서울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김군 동료 박창수씨 “충격을 받아 장례식장에도 못갔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지 궁금하다.

박창수씨(이하 박창수)=3개조가 2교대 근무를 한다. 주간 근무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10분, 야간 근무는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9시10분에 퇴근한다. 용역업체 소속으로는 1개조는 주간, 1개조는 야간 근무를 매일 하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주간·야간·휴무를 번갈아가며 한다. 1년 전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할 때는 신고 1시간 내에 가지 않으면 회사가 페널티를 물고 서울메트로에 돈을 내야 했다. 다만 ‘지체없이’ 출동해야 한다는 전자 규정을 새로 적용받게 됐다.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

박창수=사람이 부족해서 낮 근무 때 조치하는 게 힘들다.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정비를 담당하는 관리소가 4개다. 이들이 총 121개역을 담당하니 1개 관리소당 담당하는 역이 30개다. 각 관리소별로 인력이 14~16명 정도인데, 순번에 따라 휴무하는 사람, 혹은 교육받는 사람들을 빼고 나면 낮시간에는 2인 1개조 기준 4~5개조가 일하게 된다. 1개 조가 많으면 8개의 역을 동시에 관리하는 셈이다.

장진성씨(이하 장진성)=4개 관리소 중 약수관리소에서 일하고 있다. 담당하는 구간이 3호선 지축역부터 남부터미널역에 이른다. 가끔씩 다른 조들이 모두 일을 하고 우리조가 지축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남부터미널역에서 고장신고 발생했을 때 가야한다. 지축에서 남부터미널까지 22개 정거장을 거쳐야 한다.

박창수=여전히 시간에 쫓겨가며 일을 하는 상황이긴 하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젊은 남성들이라 갑작스레 입대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긴다.

-구의역 참사로 김군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창수=당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네이버 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사고가 났다, 누가 조치해야 한다, 이런 걸 서로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구의역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김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라. ‘휴무겠지, 잠깐 못받은 거겠지, 아니겠지’ 했다. 그러다 뉴스를 통해 김군이 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주변 동료들도 힘들어했다. 충격을 받아 장례식장에도 못갔다.

장진성=뉴스를 듣고 사고 후 구의역에 갔다.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김군이 일했다는 스크린도어 앞까지 갈 수도 없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울길래 나도 눈물이 나더라.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당시 숨진 고 김모군의 동료였던 박창수씨가 지난 23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당시 숨진 고 김모군의 동료였던 박창수씨가 지난 23일 서울 모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장진성씨 “고정문 옆 센서는 아직도 플랫폼 끝에 매달려 닦아야”

-사고 이후에도 계속 업무를 해야했을텐데, 불안하지 않았나.

박창수=낮에 일할 때 센서가 오작동하지 않도록 닦아내야 할 때가 있다. 센서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 쪽에서 보면 스크린도어 바깥쪽, 열차가 다니는쪽에 설치돼 있다. 그 때는 선로에 사다리를 놓을 수가 없어 스크린도어 바깥 쪽에서, 플랫폼 끝에 매달리다시피 서서 센서를 닦아야 한다. 그런 자세로 일하다가 그대로 선로 위로 떨어진 사람들을 본 적 있다. 그 분들은 등부터 바닥에 떨어져 허리를 다쳤고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다 김군이 그 자세로 일을 하다 숨졌다고 한다.

지금도 낮에는 김군과 같은 자세로 일을 해야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아찔하다. 눈 앞에 센서를 닦고 있는데도 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한 번이라도 더 눈에 간다. 은성PSD에서 일할 때도 무서웠는데, 사고 난 이후에는 더 무서웠다. 감히 내가 김군의 사고가 난 상황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장진성=스크린도어에는 평소에 열리는 문 말고도 ‘비상문’과 ‘고정문’이라는 게 있다. ‘비상문’은 붉은 레버를 누르면 비상시에 열리는 문이고, 고정문은 현재 광고판이 부착돼 있어 열 수가 없다. 비상문 옆에 있는 센서는 비상문을 열고 닦으면 되는데, 고정문 옆 센서는 아직도 플랫폼 끝에 매달려 닦아야 한다. 구의역 참사 이후로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고정문을 없애라고 요구해왔다. 서울시도 철거작업은 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다 없애려면 시간은 걸릴 것 같다.

-용역업체 소속에서 서울메트로가 직접 고용한 ‘안전업무직’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박창수=2인1조 근무가 정례화됐다는 것이다. 김군처럼 혼자 근무하다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를 못보는 경우는 없어졌다. 용역업체는 용역비를 아끼려고 인원을 적게 썼고, 우리들의 건강이나 안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근무 투입 전 안전교육은 받지도 못했다. 일하러 가기 전 ‘조심히 일해라’고 말하는 것 이상은 없었다. 지금 같은 근무 체계였다면 김군이 숨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장진성=용역업체는 원청인 서울메트로와의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를 위해 페널티를 적게 받고 좋은 실적을 내는 데만 관심 있었다. 직원들에 대한 관리를 기대할 수 없었다. 재입찰할 때 좋은 평가를 받아서 계속 일거리를 따내는 것만이 용역업체의 관심사다.

-서울메트로가 직접 고용하면서 생활수준은 나아졌나.

박창수=평소 잠자는 시간은 용역업체에서 일할 때보다 늘어나긴 했다. 법적으로 휴무가 보장되는 부분도 있고. 하지만 수입은 생각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이전에 용역업체 소속일 때는 잠을 줄이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투잡·쓰리잡’으로 일해 돈을 벌어 충당했는데 지금은 공기업에 소속돼 있다보니 다른 직업을 못 갖게 돼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이 월급 받으면서 이 일을 헌신적으로 해야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정규직화가 요구인가

박창수=우리가 ‘정규직화’, 혹은 ‘정규직에 걸맞는 대우’가 아닌 실제 정규직이 되길 바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안전업무직이라고 돼 있지만 우리는 ‘무기계약직’이다. 고용이 안정돼 있긴 하지만 정규직과 봉급 차이가 있다. 안전업무직의 1호봉 봉급은 9급 1호봉 정규직 공무원의 90~95% 수준이다. 다만 정규직은 호봉과 함께 급수도 함께 오르는 반면, 안전업무직엔 호봉은 있지만 급수가 없다. 따라서 임금 격차가 더 늘어나게 된다. 또 정규직은 이전에 유사직장을 다녔을 때의 경력을 인정받는 반면, 안전업무직은 경력 인정이 없다.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1주기를 앞둔 25일 사고 지점인 구의역 승강장 앞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강윤중 기자

오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1주기를 앞둔 25일 사고 지점인 구의역 승강장 앞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강윤중 기자

■김군의 동료들 “추모제에 시민들이 오시면 힘이 될 것 같아”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천명했다.

장진성=문 대통령이 임기 내 비정규직 철폐를 선언하신 걸로 안다. 그렇다면 (당장이 아니라) 임기인 5년 뒤에야 철폐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에서는 ‘정규직화’ ‘직영화’ 등등을 선언하겠지만, 변화의 체감 속도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느릴 것 같다.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바뀔 것 같다. 정규직화가 정규직으로의 직접적인 전환을 말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박창수=무기계약직 근무가 용역업체에서 근무할 때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크린도어 정비를 포함해 안전업무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들은 부수적인 업무가 아니라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 시민의 안전하고도 직결이 된 업무이기에 안전관리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정부와 시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진성=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적인 장치들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의 법들이 많다. 하지만 회사가 허점을 노릴 수 있게끔 돼 있어 더 많은 보호장치들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더 개정하길 바라고 있다.

박창수=오는 27일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구의역 1번 출구에서 김군 추모제를 연다. 동료들 중에 사고 당시의 아픔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하다가 구의역만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다. 추모제가 알려져 더 많은 시민들이 오셔서 함께 있어준다면 힘이 될 것 같다.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는.

장진성=시민들께서도 무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스크린도어 고장이 잦은 곳은 각 역의 환승통로 주변, 혹은 출구 주변이다. 출·퇴근 시간에 혼잡한 승객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스크린도어가 조금씩 틀어지고, 그 과정에서 오작동이 발생한다. 잦은 고장이 생기면 정비하는 노동자들도 고충이 생기지만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도 위협을 받는 셈이다. 기기의 노후화로 인한 오작동보다 승객들에 의한 고장이 잦다. 내년까지 서울지하철 스크린 센서가 신형으로 바뀌면 나아지긴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조심해 주셨으면 한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