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호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어떤 질병에 대해 ‘저절로 없어질 수 있다’고 하는 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시키지만,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사는 ‘치료를 잘못해 병을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안감을 환자에게 해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환자가 좋아지려면 의사도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깨우쳐야죠.”

최연호 삼성서울병원 교수(60)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펴낸 책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에서 환자를 진심으로 돌보기보다는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의사들,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혀 의사를 불신하는 환자들이 나타나는 의료계 일각의 현실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의사들 중에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완치율이 80%인 어떤 질병의 ‘치료 실패확률 20%’를 더 강조한다. 치료가 실패했을 때의 책임을 벗어나려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환자는 의사를 믿지 않게 된다. 치료에 필요한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책에는 환자가 의사의 진단을 믿지 못해 자신의 병을 키운 사례와 의사가 환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진단한 사례들이 여러 번 나온다. 그는 “의사들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라 부담스럽기도 했다”면서도 “(상황을) 알아야 문제가 끝난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은 의사들이 학생 때부터 소명 의식을 갖지 못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 문제도 함께 짚었다.

“자기중심적인 학생들이 (의대생으로) 다양한 경험, 좋은 경험을 많이 한다면 바뀔 수 있는데, 의대에서는 여러 의학 지식을 쌓을 시간 외에는 주지 않아요. 대학에 오기까지 성적만 신경 쓰던 학생이 대학에서도 성적과 지식에만 신경 쓰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학생들은 ‘나는 어떤 의사가 돼야 할까’ 궁금해하는데 그에 대한 교육은 없어요.”

최 교수는 지방이나 비인기과에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상도 의대 정원 확대보다는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소명 의식을 키워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지역 의료 현장을 1~2개월 경험시키면 의사로의 소명 의식이 자극될 것”이라며 “‘지역사회 의학’이라는 과목에서 이런 부분을 다루지만 실습은 형식적이다. 관련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연호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어떤 질병에 대해 ‘저절로 없어질 수 있다’고 하는 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지만,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사는 ‘치료를 잘못해 병을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안감을 환자에게 해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의료 현장에서 끊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최 교수는 의사가 환자를 이해하고 그 상황에 맞게 진료하는 ‘휴머니즘 의료’를 제시한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만 완화하는 데 힘쓰기보다 환자의 상황과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환자를 불안하게 만들어 병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소아기영양분과 전공인 최 교수는 “아이와 그 부모가 이야기하는 증상이 서로 다른 경우를 보면 무의식 중에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돼 아픈 때도 있다”며 “환자의 마음과 시대, 환경을 같이 살피면 (의학적으로도)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 역시 의사의 모습을 관찰하며 누가 좋은 의사인지, 누구에게서 좋은 진료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최 교수는“어떤 질병에 대해 ‘저절로 없어질 수 있다’고 하는 의사는 환자를 불안을 해소하지만,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유독 강조하는 의사는 ‘치료를 잘못해 병을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안감을 환자에게 해소하려고 한다”며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가려내는 능력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환자가 아파서 불안해하는 만큼 의사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점을 들어 의료계의 문제의 기저에는 ‘불안’이 있다고 본다.

그는 “앞으로 불안에 관한 책을 많이 쓰고 싶다”며 “불안 심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다루고 약을 먹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