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 휴대폰 전원이 갑자기 꺼졌다. 짧은 인터뷰를 마친 선수의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이었다. 휴식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준 선수에게 배터리 교체를 기다려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사진 촬영은 포기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취재를 와서 두 번이나 겪었다. 미리 충전하지 않은 내 불찰이겠거니 했다. 따뜻한 곳에서 휴대폰을 켜는데, 배터리는 63%…. 추위 탓이었던 게 분명하다. 기사엔 선수의 옛 자료사진을 넣으면 되겠지만, 추위도, 휴대폰도 얄밉기만 하다.

‘전 세계인의 축제’ 아니랄까봐 평창 올림픽 현장엔 정말 사람이 많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 미래에 동계올림픽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데 평창에선 다른 별 얘기다. 그래서 가끔 기계가 말을 안 듣는다. 그런 데다 주요 경기는 저녁 시간대. 신문 마감 시간과 겹친다. 쉽지 않은 취재 조건에 기계들도 힘이 든 걸까. 가끔 말을 듣지 않아 주인의 속을 태운다.

한번은 마감을 20분 남기고 기사를 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노트북을 열고 기사를 쓰려는데, 기사를 회사에 송고하는 프로그램에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란 메시지가 떴다.

컴퓨터를 껐다 켜는 응급조치를 할 시간도 사치다. 기사를 쓰면서 내내 ‘이걸 어떻게 보내나’ 고민하느라 골치가 아팠다.

한 기자는 올림픽 개회식을 취재하던 와중에 노트북 컴퓨터에 ‘배터리를 교체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고 했다. ‘충전해달라’는 말은 봤어도 ‘교체해달라’는 메시지는 처음. 추운 날씨 속 누가 성화를 봉송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취재하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경기장 및 주요 시설을 오가는 셔틀버스에서는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사용하길 포기했다. 이동하면서 기사도 쓰고 경기일정도 알아봐야 했지만, 인터넷이 자주 끊겨 그냥 휴대폰 데이터를 쓰기로 했다. 심지어 한 선배는 날이 추워서 전자담배도 충전이 안됐다고 했다.

올림픽은 5일차에 접어들었고, 그래도 삶은, 아니 취재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거친 환경과 불안한 기계, 그걸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마감시간은 또다시 다가오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