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백석문학상 수상자인 송진권 시인은 “제가 느린 사람이라 글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니, 저처럼 쓰는 사람이 귀해졌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만화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수상자가 됐다고 연락받았을 때 ‘왜 나를 주나’ 했죠.”

올해 ‘25회 백석문학상’ 수상자가 된 송진권 시인(53)은 지난 16일 서울역에서 만나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송 시인은 자신을 “많이 알려진 사람도 아닌 ‘무명’”이라고 했지만 백석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그가 쓴 수상작 <원근법 배우는 시간>에 대해 “능수능란한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통해 얻어진 감각적 이미지들은 놀라운 감칠맛으로 시에 생기를 부여한다”며 “시간으로부터 간신히 건져낸 향토적 정서를 살아 있는 현재로 만드는 성취”라고 평가했다.

그는 2004년 창비 신인문학상을 받아 등단한 20년 차 시인이자 30년 가까이 일한 철도원이다. 지금은 충북 옥천 집에서 가까운 대전을 중심으로 서울·부산 등을 오가는 경부선 새마을호·무궁화호 승무원으로 일하지만, 송 시인은 역무원과 부역장 및 팀장급 직책 등 여러 일을 거쳤다. 그는 “택배도 지금처럼 활성화하지 않았을 때는 철도 수송도 많았다. 그땐 새벽 2시까지 화물을 입하하고 열차를 연결하곤 했다”며 “동기들 중에 (일하다) 죽은 사람도 있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된 일은 역설적이게도 어린 시절부터 글을 좋아했던 송 시인을 시인의 길로 이끌었다. 1995년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에 입사한 그는 “처음 일할 때만 해도 격일 근무를 했다. 피곤함에 절어서 집에 들어가곤 했다”며 “수송 업무를 5년쯤 하다 보니 허리가 많이 아팠다. 병가로 쉬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생활인으로 늙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하던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제25회 백석문학상 수상자인 송진권 시인은 “제가 느린 사람이라 글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니, 저처럼 쓰는 사람이 귀해졌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송 시인은 방송통신대 국문학과를 다니긴 했지만, 글 선생은 1990년대 말 활성화되던 PC통신·인터넷 동호회였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동호회) 초창기라서 기성 시인들이 글 품평도 해주고, 명문대 문예창작과 친구들도 같이 글을 썼다. 서로 첨삭도 했다”고 말했다. 휴일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철도원의 숙명 탓에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기보다는 평일에 혼자 쉴 때가 많았지만, 홀로 서점을 찾아 책을 보거나 평소 떠올렸던 영감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소설이 아닌 시를 택하게 된 것도 한자리에서 쭉 글을 쓸 수 없는 근무 환경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시는 어린 시절과 고향을 주 무대로 삼고 있다. 지금 사는 집도 고향인 ‘못골’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송 시인은 “고향이 송씨 집성촌이라 한 집 건너 친척이 살았고, 어느 집이든 돌아가면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제가 느린 사람이라 도시에서 여러 부딪치는 것들이 안 맞더라. 고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고, 고향 가까이서 사니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시에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할 뿐 아니라 동시집<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도 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그는 “유년시절이 갑자기 단절됐다. 아름답게 이별하지 못한 그때의 저 자신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를 처음 쓸 때도, 지금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며 “제가 느린 사람이라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더니, 저처럼 쓰는 사람이 귀해졌다”고 말했다. 시인으로의 포부를 묻자 그는 “거창한 인류애나 세계는 저와 맞지 않는다. 저는 작고 소박한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며 “글 쓰는 것이 여전히 재밌다. 앞으로도 글 쓰는 감각을 지금처럼만 유지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