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9일 대선… 여론조사 격차 줄어

반부패·개혁을 앞세운 새 정치의 등장이냐, 군부 엘리트가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느냐. 9일 치러지는 인도네시아 대선 구도는 이렇게 요약된다. 출신부터 성향까지 정반대인 두 후보가 맞붙기 때문이다. 원내 제1당인 투쟁민주당(PDI-P)이 내세운 조코 위도도 후보(53)는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 불리는 개혁의 기수다. 반대편엔 옛 독재자 수하르토의 사위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게린드라당) 후보(62)가 있다.

조코 위도도(왼쪽)·프라보워 수비안토


▲ 조코 위도도
‘인니의 오바마’ 개혁 기수… 시장 때 친서민정책으로 인기


▲ 프라보워 수비안토
옛 독재자 수하르토의 사위… 조직·자금력으로 보수 규합


위도도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조코위(위도도의 별명)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정치 경력은 길지 않지만 수라카르타(솔로) 시장-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솔로 시민을 모두 의료보험에 가입시키고, 빈민들을 위한 마을을 새로 조성하는 등 친서민 정책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셔츠 차림으로 거리에서 시민들과 만나면서 그는 ‘일 잘하는 서민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군부·엘리트 출신 정치인이 주를 이루던 인도네시아에서 ‘조코위’의 등장은 혁명적이었다. 제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던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국민들은 비효율을 줄이고 친서민·실용주의 정책을 펼친 위도도에게 열광했다.

반면 프라보워는 전형적인 군부 엘리트 출신 정치인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도네시아 대형은행 중 하나인 BNI의 설립자다. 아버지는 산업통상장관과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수하르토 정권의 경제 정책을 입안한 인물이다. 프라보워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83년 수하르토의 딸과 결혼했고 특전사령관, 전략사령관 등 군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1998년 수하르토가 축출된 뒤 전역해 요르단으로 망명했다가, 기업가인 동생의 지원 속에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프라보워는 1980년대 동티모르 학살과 1998년 자카르타 학생시위 탄압을 주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당초에는 위도도가 서민들의 열망에 힘입어 쉽게 대권을 거머쥘 것 같았다. 지난 4월 총선 때까지만 해도 위도도와 프라보워의 지지율은 2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났다. 하지만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격차가 크게 줄었다. 여론조사기관 인도바로미터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조사에서 위도도의 지지율은 46%, 프라보워의 지지율은 42.6%였다. 

전문가들은 “프라보워가 선거운동에서 조직력, 자금력의 우위를 앞세워 보수세력을 규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립을 지키던 현 집권 민주당도 프라보워 지지를 선언하며 옛 기득권층 편에 섰다. 위도도의 또 다른 실책은 ‘새로운 정치’를 외치면서도 옛 정치세력과 선을 긋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 기반이 없는 그는 투쟁민주당 대표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프라보워는 이 점을 들며 위도도를 ‘메가와티의 꼭두각시’라 공격하고 있다고 자카르타포스트는 전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