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일 관계의 현재와 미래
ㆍ“동북아 공동체의 필수 조건은 화해…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해야”

올해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 통치가 끝난 지 70년이 됐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갈등 등 양국 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의 우경화 행보가 가속화되면서 한·일관계는 얼어붙었다. 현재 한·일관계의 문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의 대담을 통해 들었다. 두 사람은 동북아 근현대사를 연구해왔고 최근까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저술·사회 활동을 해왔다. 대담은 지난해 12월29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됐다.

<사회 조홍민 국제부장>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왼쪽)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2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의 한·일관계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과거사 해결·독도·역사 교과서 등 난제 산적
일본 ‘전쟁 가능한 국가’ 시도, 새로운 불씨로
진정성 있는 반성·더 많은 대화와 협력 필요


사회=올해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끝낸 지 70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지 50년이 됩니다. 지식인의 입장에서 광복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또 지난 70년간 한·일관계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해주십시오.

와다 하루키 교수(이하 와다)=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맺어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본이 1945년 평화국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정한 이후 70년이 흘렀지만 최근 들어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우려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남북한이 전쟁을 치르는 등 평화는 아직까지 요원한 숙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두 차례의 민주혁명이 있었고, 크나큰 일을 국민들이 이뤄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눈부시게 발전했지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보면 1965년 한일협정 조약을 맺었으나 하나의 조항을 놓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만 해석해왔습니다. 또 1998년 한·일공동선언을 통해 일본은 사죄하기에 이르렀지만 위안부 문제 등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일본 내에서는 (과거사) ‘반성’에 대한 반대 의견이 급속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새로운 문제뿐 아니라 오래된 문제들도 모두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강만길 교수(이하 강)=역사적으로 지난 70년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분단국가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 해방과 민주화, 경제 건설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를 통일민족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해방과 분단, 더불어 전쟁과 대립으로 볼 수 있지요. 어느 시각에서 역사를 보느냐에 따라 해방 70년의 인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요즘은 흔히 분단국가주의적 관점에서 해방 이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쨌든 우리의 목표인 통일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해방 70년을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1965년 맺어진 한일협정에서는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 땅을 합법적으로 지배했느냐, 침략적으로 강점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1965년 (한국은) 한일회담에서 조선총독부가 합법적인 권력이 아니라 강제 지배를 했다는 것을 받아내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지요. 조선총독부가 합법적인 권력이면 그에 저항한 독립운동은 불법적인 행위가 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제대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또 일본이 패전한 뒤 도쿄재판의 대상을 정할 때 그 시기를 한일병합부터가 아니라 만주사변부터라고 정했습니다. 이는 한일병합이 조약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지요. 일본은 1907년 군대 해산을 강행했습니다. 대한제국 군인들은 8000여명에 불과했지요. 그러나 일본의 자료만 봐도 의병 전쟁에 나선 사람들은 14만명에 달하고 전사자가 3만~4만명에 이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이 한일병합 조약에 의한 것인가, 의병전쟁 패전에 의한 것인가에 따라 역사적 의미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그런 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일병합이 불법적이었다는 인식 때문에 병합 100주년이 되던 2010년 한·일 두 나라의 양심세력들이 한일병합 조약 무효선언을 했지요. 하지만 민간 사회에서 그런 것을 해봐야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병합은 불법적이었다’고 (선언)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의 역사인식을 통해서만이라도 한일병합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와다=1965년 한일협정 때 병합 조약을 무효화한 시점을 둘러싸고 양국의 시각이 달랐습니다. 한일기본조약 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의 한 구절인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에 대해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성립 때까지는 유효했다’고 해석했지요. 한국에서는 일본이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타협을 하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한일병합 조약이) 처음부터 무효라는 것을 일본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양국 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애당초 무효’라는 한국의 입장을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군 위안부, 독도 영유권 문제 및 역사인식의 차이가 양국 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강=역사교육이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교육의 근본적 목적은 평화주의 교육, 민주주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상황에 따라 자꾸 정치적으로, 또는 (역사)인식이 부족한 쪽에 의해 이용되기도 합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행한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역사교육의 근본적 목적인 평화주의의 실현에 있습니다. 여기에 목적을 두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학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정치적 조건에 이끌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와다=한·일 간 역사인식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것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의해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습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도 이를 인정했지요.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민족의 의지에 반해 강제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일병합 조약이 무효라는 인식에까지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역사교육이라는 것은 그 방향이 정부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디까지나 학계의 양심적인 연구에 의해, 그것을 바탕으로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역사교과서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없으며 평화주의를 정착시키는 교육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역사학계가 반성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사회=그동안 한·일 정치인들은 역사 문제를 이용하는 측면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시지요.

와다=역사교육은 정부가 기본적인 선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반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또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지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강=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쪽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인정하는 학계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게끔 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도 이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물론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역사학회도 있고 정부의 의견에 따라가는 학회도 있기 마련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쪽이 더 많아지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와다=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지금은 고노담화를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 돼 버렸습니다.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를 내놓고, 위안부의 강제된 위안소 생활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민간에서 조사를 해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위안부는 단순한 매춘부라는 의견은 정부 방침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연구가 아닌, 고노담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 강만길
“한·중·일 3국, 지역 공동체 만드는 데 뒤처져
남북관계 개선해 대륙·해양 가교 역할 해야”


▲ 와다 하루키
“아베 총리, 일본이란 국가의 입장 계승 책무
과거사 문제 사죄한 담화 내용 강화할 필요”


사회=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우경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강=일본의 정치적인 상황을 보면 대체로 우경화됐던 시간이 길었지요. 일제 때도, 해방 후에도 일본에서는 자유민주당이 오랜 기간 통치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개혁적·혁신적 정권이 있긴 했지만 기나긴 시기 동안 일본은 우경화 속에서 정치를 해온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일종의 반발이랄까, 국민들 사이에 우경화가 먹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길게 한번 봅시다. 지난 20세기 전반기에 제국주의 전쟁 2번, 후반기에는 동서 냉전이 있었습니다. 21세기 들어 지역공동체가 발달하기 시작했지요. 유럽연합(EU)이니, 아세안(ASEAN)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한·중·일, 이 3개국이 지금까지 앞서갔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21세기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는 동남아시아보다 뒤처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세안+3국’ 이런 형태로 국제회의가 열리곤 하지요. 반성해야 합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도 그렇고 ‘21세기 세계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인식하고 거기에 발맞춰나가다 보면 ‘우경화’나 ‘재무장화’ 같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유럽을 봅시다. 독일이 통일되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프랑스였지요. 하지만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EU 가맹국이라는 한 틀 안에 묶인다는 점에서 적국이 아닌 동맹국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아세안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사회주의 통일이 된 베트남의 경우도 아세안에 가입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로운 세계에 맞춰 살아나가야 합니다. 일본의 어느 교수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근대화를 하면서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을 지향한다는 뜻)’를 했고, 패전 이후 ‘탈아입미(脫亞入米·아시아에서 벗어나 미국을 지향한다는 뜻)를 했는데, 21세기에는 탈미입아(脫米入亞·미국에서 벗어나 아시아를 지향한다는 뜻)를 해야 할 것이다.” 지역 공동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와다=동북아 공동체는 제가 늘 주창해왔던 것으로, ‘유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동북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점차 비현실적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도 끼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화해가 필요합니다. 이 지역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역 공동체가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역 공동체라는 목표를 가져야만 현실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회=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의 진정한 변화없이 대화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일 정상간 대화가 막혀 있습니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와다=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이 동북아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는 반드시 실현해줬으면 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베 총리에게 먼저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보다 정상회담을 열어 대화를 하면서 아베 총리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전문가와 피해자, 언론 매체가 모두 만나 같이 토론한다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강=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보면 대륙의 중국·러시아, 바다의 일본, 그 배후에 미국이란 국가들 틈바구니에 놓여 있습니다. 북쪽은 대륙세력권에, 남쪽은 해양세력권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인 것이지요. 사실 이들 세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한반도가 분단된 탓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할 일은 남북한의 연결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안목을 갖고, 연결된 남북을 통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박 대통령이 당장 일본하고 뭘 해야 하느냐 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대륙과 해양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중국과 일본, 미국, 이제는 러시아의 눈치까지 보면서 옳은 역사를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남북을 연결해야 합니다.

와다=한국은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정치적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한국의 힘이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북한은 고립돼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일본과의 교섭을 진전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미국은 북한을 승인해야 합니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일본도 북한을 승인하게끔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덧붙이자면 (정상회담에서 필요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안이 이미 민간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6월2일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가 일본 정부에 대안을 제시했지요. 한국과 일본의 민간 단체가 서로 만나서 나눈 얘기로, 새로운 안입니다. 피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일본 정부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기 때문에 앞으로 논의를 통해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정상회담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회=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와다=지금 아베 정권은 아주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아베는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고 총리로서 일본이란 국가의 입장을 계승해야 합니다. 헌법 개정은 아베 총리의 희망이지만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 북한과의 교섭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아베로서는 이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있지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이라고 봅니다.

강=아베 정권은 헌법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평화헌법 9조를 없애겠다고 하는 생각인데, 일본에서 ‘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주려고 하는 운동이 일고 있지요. 한국에서도 이 운동에 50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는 방향으로 한·일 시민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자민당)에서는 헌법을 바꿀 만한 의석이 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일본에도 평화 세력이 있으니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회=한국과 일본의 올바른 발전상을 제시해주십시오.

와다=1995년과 1998년 일본 정부는 (담화와 공동선언문을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때 언급되지 않은 식민지 지배, 과거사에 대한 반성, 사죄와 같은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의 틀 위에서 양국이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와 함께 협력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양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사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나온 담화(내용)를 강화해야 합니다. 아울러 한·일 양국은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봅니다.

강=한국이 일본에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물론 ‘(불행한)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끔 서로 협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사죄도 중요합니다. 와다 교수도 얘기했지만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고,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방향으로 나가려면 과거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강만길·와다 하루키 교수는 누구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81)는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역사학자이다. 고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퇴임하기 전까지 조선 후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왔다. <20세기 우리 역사>, <분단 시대의 역사 인식> 등 100여권의 저서로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도 힘썼다. 그는 1970년대 ‘분단시대’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으며, ‘흡수통일론’을 대신할 ‘남북대등통일과 타협통일’이라는 평화통일론을 제시했다. 민족화해협력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올바른 역사교육 실천을 위해 일했다. 2001~2005년 상지대 총장을 역임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76)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이다. 도쿄대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한 와다 교수는 러시아 역사와 한국 현대사를 주로 연구했다. 1998년 명예교수직에 오르기 전까지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해왔다. 그는 사료를 바탕으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연구를 해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 <한국전쟁>,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등 한국에도 알려진 저서들을 펴냈다. 와다 교수는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전무이사로 일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섰다. 현재 고령의 나이에도 한·일 양국을 오가며 연구 및 저술, 사회참여 활동을 하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