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7) ‘미래 위한 투자’ 케냐 콘자시티·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

▲ 케냐 콘자시티
토착 통신사 사파리컴, 은행 없이도 소액 결제 등 모바일 결제서비스 ‘대박’
사파리컴 성공 본 케냐 산단·대학·주거지 공존 IT 중심 발전 전략 세워
신도시 개발로 경제 성장일자리 창출까지 기대


▲ 아부다비 마스다르시티
에너지 안 아끼던 산유국, 재생가능 에너지 눈 돌려
2008년 도시 건설 첫삽… 공기 순환에 설계 초점 둬
‘윈드타워’ 도시의 명물로… 무인 전기차 PRT도 운행


지난 1월15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를 벗어나 제2의 도시 몸바사로 이어지는 A109번 도로를 달렸다. 해발 1660m의 고원도시인 나이로비에서 벗어나 동부로 내려갈수록 눈에 비치는 풍경들은 바뀌어갔다. 고층건물이 줄지어 선 나이로비와 달리 ‘몸바사 로드’로 불리는 고속도로 주변은 타조와 얼룩말들이 돌아다니는 사바나(초원) 지대다. 나이로비에서 60㎞쯤 떨어진 곳에 이르자 사바나 가운데 서 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콘자(Konza) 테크노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케냐 정부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만들고 있는 정보기술(IT) 산업도시, 일명 ‘실리콘 사바나’라 불리는 콘자시티 공사현장이었다.

지난 1월18일 케냐 나이로비 인근 마을에서 모바일 입출금 서비스인 ‘엠페사’를 운영하고 있는 가게로 한 이용객이 들어가고 있다. 나이로비 | 김창길 기자


케냐 나이로비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콘자시티 건설현장에서 지난 1월15일 도로 기반시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콘자 | 김창길 기자


■ 동아프리카 미래 ‘실리콘 사바나’

1단계 공사는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현장사무소에는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1단계 공사 조감도가 걸려 있다. 160㏊에 걸쳐 생명과학 연구단지, 주거지역, 대학교 등을 건설하는 것이 1단계 공사다. 이 지역을 관통할 4.7㎞ 길이 도로를 닦기 위해 포클레인 2대가 사바나를 덮고 있는 버티졸 토양을 제거하는 중이었다. 아열대 지방에 많이 분포한 버티졸 토양은 날씨가 건조해지면 균열이 생긴다. 콘자시티 전체 개발구역 2000㏊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추공 7개가 있다. 4월까지 이 시추공에 파이프를 연결해 공사현장에 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콘자시티는 인프라 구축이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콘자개발청 관리담당관 아브라함 온뎅은 “인프라 공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투자와 입주 신청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냐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비전 2030’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실리콘 사바나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세계 정보기술 업체들을 유치해 산업단지를 만들고 대학과 주거지역을 짓되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도 보존해 첨단기술과 야생 생태계의 공존을 모색하겠다는 게 케냐 정부의 계획이다.

케냐가 이 프로젝트를 착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토착 통신회사 사파리컴의 성공이 컸다. 사파리컴의 모바일 결제서비스 ‘엠페사’가 속된 말로 대박을 내면서 신흥 IT 강국을 향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통신·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케냐에서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는데 엠페사가 그 빈틈을 메워줬다. 사파리컴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아도 엠페사 계좌를 개설해 여러 가맹점들에서 소액 결제를 하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엠페사와 제휴한 은행의 예금 서비스도 휴대전화로 이용할 수 있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기드온(25)은 “엠페사가 케냐의 결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사파리컴 덕에 케냐는 아프리카의 통신업계를 장악한 인도 에어텔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

정부는 엠페사의 성공을 보고 IT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콘자개발청 관계자는 “대학 교육체계도 정보통신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이나 IBM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동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케냐를 선택한 데다, 정부도 관련 분야 지원을 늘리고 있다. 신기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청년 인구가 60%에 이르고 인구 90%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점도 케냐의 강점이다. 지정학적 이점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는 케냐보다 경제 규모는 크지만 정정이 불안하다. 아프리카에서 정보기술이 앞서나간 곳은 르완다지만 르완다는 케냐보다 경제 규모가 작다”고 말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등 여러 국제기구와 외국 기업들이 들어가 있는 나이로비는 명실상부한 동아프리카의 중심도시다. 그러나 전국의 빈민들이 몰리면서 나이로비 외곽은 아프리카 최대의 슬럼으로 변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소말리아 출신 난민들까지 밀려들어와 인프라 부족과 치안 문제가 심각하다. 콘자시티는 정보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케냐의 꿈이 실린 곳임과 동시에, 붐비고 오염된 나이로비의 한계를 극복할 해법이기도 하다. 기업뿐 아니라 대학과 주거지역을 함께 만들어, ‘아이디어만 들고 입주할 수 있는’ IT 생태계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콘자시티는 2030년까지 20만명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 1월15일 콘자시티 건설 현장사무소에서 현장 관계자가 도시계획도를 보여주고 있다. 160㏊에 걸쳐 생명과학 연구단지, 주거지역, 대학교 등을 건설하는 것이 1단계 공사다. 콘자 | 김창길 기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시티 중앙에 에어컨이 아닌 자연 바람을 이용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바람탑(윈드타워)이 세워져 있다. 건물들도 적당히 그늘이 생기게 배치해 뜨거운 중동의 태양 아래서도 에어컨 없이 야외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 ‘탄소 제로’ 꿈꾸는 마스다르시티

지난 세기 동안 발전과 쇠락을 거쳐온 낡은 도시들의 ‘재생’과 함께, 각국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에 걸맞은 미래형 혁신도시들이다. 거대 산업에 의존해 성장해온 도시들은 이미 30~40년 전부터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정보기술이나 교육산업 등에 미래를 건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의 보스턴처럼 대학도시에서 연구·개발 중심도시로 거듭난 곳이 있는가 하면, 콘자시티처럼 ‘초원에 새 도시를 짓는’ 계획도 있다.

걸프 에너지 부국들은 ‘화석연료 이후’를 위한 미래도시 구상이 한창이다. 그 중 한 곳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를 찾아갔다. 아부다비가 ‘포스트 석유시대’의 도시 모델로 건설 중인 마스다르시티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1월21일 이 신도시의 중심 시설인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마스다르공과대학)에 들어서니 어른 키만 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온이 낮은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스다르시티 디자인 디렉터인 크리스 원이 물었다. 그는 주변 지역보다 이곳의 체감기온이 10도는 낮을 것이라면서, 도시를 설계할 때 공기가 내부에서 최대한 순환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걸프 산유국들은 전기를 펑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유매장량 980억배럴(2013년 추정치), 세계 7위의 원유 보유국인 UAE는 전체 에너지를 화석연료를 통해 얻는다. 이 나라 전기는 100%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 얻는다는 뜻이다. 핵발전량 0%, 수력발전 0%, 재생가능 에너지 0%. 2010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그렇다. 

최근 UAE는 바뀌고 있다. 지난해 6월 UAE는 아부다비에서 에너지 업계 대표들과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미래 에너지 서밋’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세계 최대 풍력 터빈 제조회사인 덴마크의 베스타스와 함께 ‘번영을 위한 바람’ 프로젝트를 추진, 저개발국의 에너지난 해소를 도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UAE를 구성하는 7개 에미리트(토후국) 중 수장 격인 아부다비는 석유 고갈 이후를 내다보며 미래 에너지 투자를 급속히 늘리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에 대한 투자와 함께, 아부다비 미래 구상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마스다르시티다. 

2004년 타계한 아부다비 지도자 자예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이 청정에너지 도시 구상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외부에서는 “UAE의 새로운 쇼가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아부다비는 2008년 첫삽을 뜬 뒤 계획을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정부가 투자한 무바달라 개발회사 계열사인 마스다르가 도시 건설을 떠맡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의 협력으로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를 세우고, 석유·가스 산업의 발전 방향과 기후변화 문제를 다룰 연구소를 세웠다. 

지난 1월2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시티에 태양광 패널이 줄지어 설치돼 있다. 패널을 통해 발전된 전기는 마스다르시티 주요 시설들을 가동하는 데 쓰인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탄소 제로’ 도시로 건설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마스다르시티 주민들이 도시를 순환하는 무인이동차량인 PRT 정류장에서 내리고 있다. 이 차량은 전기로 운행된다. 아부다비 | 김창길 기자


■ 도시의 중심이 된 ‘바람탑’

마스다르시티에서는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곧 에너지 절약이자 미래 전략이다. 원은 “보도블록도 태양열을 흡수해 반사하지 않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마스다르 인스티튜트 외벽은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와 중국 베이징 올림픽 수영 경기장 워터큐브에 쓰였던 ETFE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이 재료는 낮에 흡수한 태양열을 밤에 방출한다. 단열 효과도 뛰어나다. 창문 차양막조차도 직사광선을 받는 시간을 3시간 이내로 줄이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계산돼 만들어졌다. 건물 높이는 4층을 넘지 않게 해 볕이 잘 들지만, 그늘이 적당히 생기게끔 건물들을 배치해 에어컨 없이 야외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마스다르 인스티튜트 한가운데에는 45m의 ‘윈드타워’가 서 있다. 이 탑은 높은 곳에서 바람을 받아들여 공기통을 통해 아래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 중동의 큰 건물에는 오래전부터 바람 기둥이 있었다. 이란에서는 바드기르, 아랍어로는 말카프라 부르는 전통적인 바람 기둥을 응용해 만든 것이 마스다르의 윈드타워다. 이 탑 덕에 마스다르 인스티튜트는 다른 곳보다 시원하다. 바람탑은 마스다르시티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또 다른 명물은 PRT라는 무인 전기차다. 어른 네 명이 마주보고 탈 수 있는 이 차에는 운전석도 운전자도 없다. 하지만 화면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전진, 후진, 회전 모두 막힘 없이 정해진 구간을 달린다. 정거장 2개 길이의 짧은 노선에 불과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교통수단으로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마스다르시티는 지금 건설이 진행 중이다. 마스다르사와 독일 지멘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일본 미쓰비시 등 굴지의 기업들을 비롯해 20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나 주거지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정부는 마스다르를 ‘탄소 제로(0) 도시’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마스다르 인스티튜트와 지멘스 본부 등 주요 건물들도 자체 태양광 패널을 갖고 있다. 

아직은 태양광 발전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지역 발전당국으로부터 전기를 받아 쓰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도시 건설이 늦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아부다비 정부의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다만 주민들 사이에 아직은 친환경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모자라는 것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원은 말했다. 


<콘자·아부다비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