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제주 ‘생각하는 정원’ 설립자 성범영 원장

“분재나무를 다른 화분에 옮겨 심을 때 굵은 뿌리를 잘라줍니다. 그러면 새 뿌리가 돋아나 3~5배 정도 수명이 길어집니다. 사람도 굵은 뿌리 같은 고정관념을 솎아내야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죠.”

지난 8일 찾은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의 ‘생각하는 정원’은 ‘분재는 곧 철학’이라는 설립자 성범영 원장(76·사진)의 깨달음이 녹아든 듯했다. 성 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문화·예술과 철학이 담긴 관광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생각하는 정원 제공


경기 용인시가 고향인 성 원장은 1968년 제주도에 정착했다. 나무에 대한 관심,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를 이끌었다. 정착은 쉽지 않았다. 황무지를 갈아엎고 돌담을 쌓는 외지인을 지역 주민들은 반기지 않았다. 변변한 농기계도 없었다. 때로는 새벽 2~3시부터 일어나 담을 쌓았고, 허리도 세차례 수술했다. 성 원장은 “한국적인 정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피눈물 흘려가며 노력했다”고 말했다.

노력 끝에 성 원장은 1992년 생각하는 정원의 전신인 ‘분재예술원’을 열었다. 이후 국제적으로 ‘세계 유일의 분재 정원’으로 소개됐다. 분재 문화가 발전한 일본 전문가로부터도 ‘세계 일류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생각하는 정원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분재를 하며 느낀 성 원장의 철학이 해외를 사로잡았다. 성 원장은 분재를 하며 느낀 바를 2004년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책으로 엮어 냈고, 이는 2007년 정원의 공식 명칭이 됐다.

1995년 방한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결정적 계기였다. 성 원장은 “장 주석이 나무마다 쓰인 글귀들을 찬찬히 읽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장 주석에게 “분재를 가꾸면서 자기 자신을 개조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감동한 장 주석은 귀국 후 황무지를 일군 성 원장을 ‘한강의 기적’에 빗대며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칭송했다.

이후 정원은 민간 외교의 장이 됐다. 1998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이 방문했고 한·중 수교 15주년, 20주년 행사가 별도로 열렸다. 중국 고위 관료 및 기업인들이 앞다투어 방문했다. 오는 9월부터는 중국 9학년(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과목 교과서에도 생각하는 정원 이야기가 수록된다.

성 원장은 분재에 대한 편견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중 하나는 분재가 일본 문화라는 데서 오는 반감이다. ‘본사이(bonsai)’라는 영어 표기가 있을 정도로 분재는 일본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일본의 주장과 달리 분재는 일본이 아닌 중국에서 시작된 문화다. 성 원장은 “외국인 관광객들 중 정원을 방문한 뒤 분재가 일본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이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 문화 예술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한시(漢詩) 외우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을 포함해 해외 관광객들은 장쩌민 전 주석처럼 정원에 걸린 글귀들을 유심히 읽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나무들만 빨리 훑고 나무의 가격을 먼저 물어본다고 성 원장은 말했다. 성 원장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보고 싶어하지만 국내에는 적절한 장소가 부족한 것 같다”고도 했다.

<제주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