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또다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잉락의 오빠이자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 등에 대한 사면 법안을 추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06년 이후로 계속돼 온 태국의 정치적 혼란 이면에는, 왕실과 군부를 정점으로 한 엘리트 기득권층과 탁신을 상징으로 하는 반기득권층의 권력투쟁이 숨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이후 태국의 정치상황을 일지로 정리해봅니다.


2013년


11월 1일 새벽 4시에 잉락 친나왓 총리가 이끄는 프어타이(Pheu Thai) 당 중심의 하원이 사면법안을 통과시킵니다.


11월 4일 방콕 등 여러 곳에서 반탁신 진영이 탁신 사면 반대 시위를 합니다.



잉락은 11월 7일 "사면법안을 철회하며, 다시 시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반탁신파가 많은 상원은 11일 법안을 부결시킵니다.


탁신을 몰아낸 기득권층에 의해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11월 20일 잉락 정부가 추진한 개헌안이 위헌이라고 결정합니다.


11월 23일과 24일 방콕 시내 민주기념탑 광장 등에 10만명이 모여서 잉락 반대 시위를 합니다. 반탁신 시위대(PDRC)는 25일 재무부 등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정부 마비를 시도합니다. 


잉락 불신임안이 의회에 회부되지만 11월 28일 반대 297표 대 찬성 134표로 부결됩니다. 반잉락 시위대는 군 사령부로 몰려가 군의 개입을 촉구합니다. 쁘라윳 짠-오짜 육군 참모총장은 "군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시위대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반탁신 시위가 계속되면서, 11월 30일부터 12월 1일 사이에 반탁신 '옐로셔츠' 시위대가 친탁신 '레드셔츠' 시위대와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1일 잉락과 시위대 측이 비밀 협상을 했습니다만 결렬됩니다.



12월 5일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86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과거 반탁신 움직임의 배후에 있었던 국왕이 어떤 입장을 발표할 지 주목됐습니다만, 국왕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12월 8일, 프어타이 당 내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개헌안 위헌결정에 반발이 심했지만 잉락이 푸미폰 국왕 앞에서 개헌안 철회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반탁신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153명은 잉락에 반대하며 의원직에서 집단 사퇴합니다.


12월 9일 반탁신 시위 지도자 수텝은 정부 청사 앞에서 '최후의 결전'을 선언합니다. 잉락은 의회 해산을 선언하며, 이듬해 2월 2일 조기총선을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수텝은 잉락이 24시간 내에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2월 17일 수텝은 다시 집회를 하겠다며 "조기 총선 전에 개혁을 하고 잉락과 내각은 즉각 총사퇴하라"고 요구합니다. 선거를 치러서 탁신 진영에게 한번도 이긴 적이 없는 반탁신 진영은 총선 없이 국민협의회를 구성해 향후 12~18개월 동안 개혁작업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12월 21일 반탁신 야당인 민주당은 잉락이 발표한 2014년 2월 조기총선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다음날인 12월 22일 시위에 반탁신 진영은 350만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외국 소식통들은 27만명이 모였다고 전했습니다.


12월 26일, 태국일본경기장 앞에서 시위대와 충돌이 벌어져 경찰 1명과 시위대 1명이 사망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2월 2일로 예정된 총선을 연기할 것을 제안합니다.


12월 27일 쁘라윳 육군참모총장은 군사 쿠데타 가능성을 시사하며 "그런 일이 일어날 지 아닐 지는 시간이 말 해주겠지만 우리는 우리 당국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12월 28일 수텝은 잉락 정부를 마비시키겠다며 '방콧 셧다운 시위' 계획을 발표합니다.




2014년


1월 2일 수텝은 라자담는(Rajadamnoen) 복싱경기장에서 연설하며 1월 13일 '방콕 점령(Occupy Bangkok)'을 선언합니다. 같은 날 잉락을 지지하는 친정부 시위지도자 자뚜뽄 쁘롬판은 "평화 원칙에 따라 정부를 지키겠다"고 발표합니다.


1월 3일까지, 2개월여의 소요로 총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튿날 당국은 '방콕 점령' 시위가 불법이라고 규정합니다. 


1월 6일, 잉락은 여전히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는 아니라며 내부치안법(ISA)에 따라 대반정부 시위에 대처하겠다고 밝힙니다.


1월 9일 씬빠꼰 대학 등 3개 대학 학생들이 반탁신 옐로셔츠 시위대에 항의하는 맞시위를 벌입니다. 


1월 13일 옐로셔츠는 방콕 셧다운 시위를 합니다만 파장은 크지 않았습니다.


14일 야당인 민주당과 반탁신계 아피싯 웨차치와 전 총리 자택을 노린 사제 폭탄 공격이 발생합니다만, 폭발물처리팀이 사전에 출동해 폭발하지는 않았습니다.


1월 16일 국가반부패위원회는 잉락이 중국과 쌀 수출계약을 하면서 임무를 게을리 해 국가가 손실을 입게 했다며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합니다. 반정부 시위대 뿐 아니라 기득권 국가조직까지 압박하고 들어오면서 잉락을 둘러싼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1월 17일 방콕 시내 룸피니 공원 등 세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방콕 주지사의 집에 누군가가 수류탄을 던졌지만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터스 짜른폰 쇼핑센터 부근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수류탄 공격을 받아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습니다.


1월 19일 다시 범인을 알수 없는 총격이 일어납니다. 프리랜서 언론인인 앤드루 맥그리거 마셜은 CNN 인터뷰에서 "반탁신 시위대는 다가올 총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보고 총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소요를 일으키려는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날 군부는 중립적인 입장을 재확인합니다.


1월 21일 정부는 6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 정부는 이 조치에 따라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언론을 검열하고 집회를 해산하고 질서유지를 위해 무력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1월 24일 반탁신 성향의 헌재는 2월 2일 총선을 연기해도 된다고 결정합니다. 하지만 방콕대학의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5명 중 4명이 총선에 참여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1월 26일 반탁신 시위 지도자 수틴 따라띤이 연설 도중 총격을 받고 사망합니다.


1월 29일 군은 선거가 무사히 치러지도록 보장하겠다고 밝힙니다.


2월 2일 총선이 실시됩니다만 87개 선거구에서는 반탁신 시위대의 방해로 투표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2월 4일 총선에서 패한 반탁신 야권은 헌재에 총선 무효결정을 청구합니다.


2월 7일 선관위는 선거가 치러지지 못한 지역에서 12일 선거를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합니다.


불교 축일이기도 한 2월 14일 수텝은 잉락과의 대화를 모두 거부한다고 밝힙니다.


2월 18일과 19일, 당국이 방콕 곳곳을 점거한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1명과 시위대 4명이 사망합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태국 정부의 강경진압을 비판합니다.


2월 22일과 23일 다시 소요가 일어나 총격과 수류탄 공격이 잇따르고 1명이 숨졌습니다. 


3월 20일 태국농민회가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를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3월 21일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2월 2일 총선이 전국에서 치러지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선언합니다. 대학생들은 검은 옷을 입고 "태국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항의 시위를 합니다.


3월 29일 반정부 시위대가 다시 방콕 시내에서 행진을 합니다. 53개 정당이 45~60일 이내 조기 총선 실시를 제안했지만 반탁신 민주당은 선거 자체를 해선 안된다고 재차 주장합니다. 


2011년 9월 잉락 총리실은 따윈 쁠리안스리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경질하고 경찰청장이던 위찌안 카셈텅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공석이 된 경찰청장에는 탁신의 전 처남인 쁘리우빤 다마퐁을 승진시켰습니다. 4월 3일 헌재는 이것이 직권남용에 해당된다며 조사에 착수, 잉락에게 15일 이내 출두를 명합니다.


4월 25일 반탁신 시위대가 방콕 시내 짜응 왓타나에서 바리케이드를 제거하던 군인에게 발포, 숨지게 합니다.


4월 30일 잉락 정부와 선관위는 7월 20일에 다시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합니다.


5월 6일 잉락은 헌재에 출두해 직권남용 혐의를 부인합니다.


5월 7일 헌재는 잉락이 직권을 남용했다며 총리 해임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 지도자 수텝은 잉락 해임으로는 부족하다며 계속 시위를 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5월 8일 국가반부패위원회는 이미 해임된 잉락을 탄핵해야 한다며 탄핵안을 상원에 보냅니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향후 5년간 잉락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월 10일 수텝과 반정부 시위대는 다시 도심에서 행진을 하고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임시 총리가 이끄는 내각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5월 20일 쁘라윳 육군참모총장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법에 따른 통치를 선언합니다. 



쿠데타는 아니라고 했던 쁘라윳은 22일 쿠데타임을 선포합니다. 23일 새벽에는 쁘라윳이 급조된 국가평화질서유지위원회(NPOMC)의 위원장과 총리 대행을 겸직한다고 발표합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