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청소년단체 회원들이 2013년 12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청소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날씨가 추운데 교복바지는 사기 비싸서 급식실 갈 때 담요를 몸에 잠깐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뺏겼다.” 

“핸드폰을 압수당했다.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했는데 받으러 가니 액정이 깨져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을 뺏긴 내 잘못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인공눈물이 담긴 파우치를 꺼냈는데 담임선생님이 이틀간 뺏었다. 당시 화장을 하지도 않았고 화장품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파우치를 꺼냈다는 게 압수 이유였다.”

“작년에 뺏긴 귀걸이를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다.”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물건을 압수당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이같이 증언했다. 학생들은 교내에서의 물건을 압수하는 행위 자체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데, 납득할만한 기준이 없이 뺏긴 물건을 온전한 상태로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6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서울지역 중·고등학생 10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 지역 중·고등학생 소지품 압수사례’를 보면, 많은 학생들은 교사가 화장품을 압수해 이를 파손하거나 아예 버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강남구 한 고등학생은 “하교 후 책상 위에 놓고 갔던 아이섀도우 파레트를, 선생님이 다시 쓸 수도 없게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노원구의 한 중학생은 “화장품 압수 규정상 압수 기간은 1주일이지만 선생님이 마음대로 한 학기 뺏어서 화장품 유통기간이 지났다”고 했다. “화장품을 뺏으면 망치로 부숴 버린다” “한 번에 버린 화장품 가격을 모두 합하니 20만원이 넘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규정 위반 대상이 아닌 로션을 뺏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학교 규정에는 BB크림 등이 허용된다고 했는데 로션도 바르지 말라며 뺏어갔다.” (동작구 ㄱ고) “화장품을 압수할 때 금지 대상이 아닌 로션이나 다른 것들을 뺏어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다.”(양천구 ㄴ중) 중랑구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는 “화장품 압수해 페기처분한다던 선생님이 압수한 화장품을 쓰는 걸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강동구 한 중학생은 “친구의 화장품을 압수한 선생님이 이를 돌려주지 않은 채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고 전했다. 

설문에 응한 학생들 중 화장품, 로션, 크림을 ‘압수대상으로 삼고 압수기간까지 규정한 경우’에 답한 사람은 26.5%였다. 반면 ‘금지 규정은 있으나 압수한다는 내용은 없다’는 학생들은 36.9%였다.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가 압수 대상 및 규정이 명시된 경우가 56.0%에 이르렀다는 점과 대비된다. 아수나로는 “화장품 압수를 규정에 따라서 하지 않고 교사 자의적으로 하고 있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류를 압수당한 학생들 중에는 “추울 때 담요를 두르고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매점을 갈 때 선생님들이 담요를 빼앗고는 돌려주지 않았다”(중랑구 ㄷ고), “등굣길에 빼앗긴 담요를 받으러 선생님께 찾아갔더니 ‘네 것이란 증거가 있느냐’며 못돌려받았다”(노원구 ㄹ중) 등의 주장이 나왔다. 또 “사정이 있어 여학생 치마를 전달하러 간 남학생이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치마를 압수한 경우도 있었다”는 중학생, “추운 겨울에 교실 내에서 사복 점퍼를 걸쳤다가 뺏겼다”는 중학생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는 압수 1개월 내 돌려주는 경우가 70%가 넘었다. 그러나 “액정이 깨진 채 돌려받았다”며 금지물품을 가져온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있었다. 도봉구의 한 고등학생은 “학교 교칙에 핸드폰 사용이 자유인데 우리 반만 담임선생님이 따로 핸드폰을 매일 걷어갔다”고도 했다. 한 중학생은 “지방에서 전학을 오는 바람에 새 학교 가는 길을 찾으려면 핸드폰 필요했는데, 학교에 가져왔다는 이유만으로 핸드폰을 2주간 뺏겨서 엄마가 며칠 등학교를 도와줬다”고 답변했다. 

학생들의 물건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편견을 갖고 학생들을 대했다는 말도 나왔다. 강남구 한 중학생은 “선생님이 마음에 안들어 하는 애들 위주로 (소지품을) 확인해 뺏고 버리거나 돌려주지 않는다”며 “정확한 압수 기간, 허용 가능한 소지품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고 선생님들마다 다르다”고 했다. 또 강남구의 한 여고생은 “압수받은 파우치를 돌려받으면서 선생님이 ‘원래 학교 밖에서 화장하는 것도 잡으려고 했다. 넌 반항아가 아니잖아’라고 했다”며 “제 말은 듣지 않고 무작정 화장품을 뺏고 반항아 취급을 하신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서구의 한 여고생은 “소지품 검사할 때 팔다리를 다 만져보고, 몸을 더듬고 수색하는 게 부담스럽고 수치스럽다”고도 했다.

아수나로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13조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해 긴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면 학생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며 “대부분의 압수 물품들은 긴급하게 안전을 위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조사 참가자들 중 ‘압수 물품이 분실되거나 파손된 경우가 없다’고 한 응답자는 11.6%에 불과했다”며 “압수 자체도 인권침해지만 압수물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도 밝혔다. 아수나로는 “서울시교육청은 소지품 검사·압수 문제가 사생활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지 대책을 세우고 조사에 나서야 한다”며 지난 4일 압수사례 보고서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