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군 미필 남자 선수들의 머릿 속엔 대회 기간 내내 ‘면제’란 두 글자가 떠나지 않는다. 금메달과 함께 허락되는 병역 면제 혜택에 선수들은 울고 웃었고, 국민들은 때로 씁쓸함을 느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내내 한국의 가장 큰 이슈메이커였던 손흥민(26·토트넘)은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승리하면서 병역 혜택을 입게 됐다. 한국 축구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때 소집되지 못했던 손흥민은 2016 리우 올림픽 8강에서 탈락하며 삼켰던 아쉬움을 이번 대회 풀어냈다. 러시아 월드컵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손흥민은 약 2년간의 군복무로 발생할 뻔한 경력 단절을 피하게 돼 1억 유로의 몸값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김학범호의 유일한 현역 ‘일경’ 황인범(22·아산)도 조기 전역에 성공했다.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자 정구 2관왕 김진웅(28·수원시청)은 극적인 상황 변화를 맞이했다. 지난달 29일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웅은 9월18일 입대영장을 받아놓고 대회에 참가했다. 국군체육부대는 정구팀을 운영하지 않아 김진웅에게 군 입대는 곧 2년간의 공백 및 은퇴였다. 그러나 입대를 20일 앞두고 김진웅은 금메달을 따 선수 생활을 극적으로 이어가게 됐다. 부담을 던 김진웅은 이틀 뒤 남자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하나 더 수확했다.

후배의 병역 해결을 스스로 막은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선배도 있었다. 펜싱 남자 사브르 2관왕 구본길(29·국민체육진흥공단)은 개인전 결승에서 후배 오상욱(22·대전대)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다짐대로 ‘후회 없는 승부’를 했지만 구본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오상욱이 이겨 금메달을 땄다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본길 자신도 2010 광저우 대회 금메달로 혜택을 입었기 때문인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구본길은 오상욱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고, 구본길은 “정말 힘들었다”는 속내를 밝히며 겨우 웃었다. 정작 오상욱은 내내 덤덤한 모습으로 일관해 대조를 이뤘다.

사이클에서는 불운에 운 사나이가 있었다. 김옥철(24·서울시청)은 지난달 31일 사이클 매디슨 결승에서 함께 뛴 박상훈(25·한국국토정보공사)의 뒷타이어가 펑크나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쳤다. 두 선수가 번갈아가며 160바퀴를 달리는 매디슨 종목에서 박상훈 자전거의 타이어를 교체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고, 김옥철은 교대 없이 6바퀴를 연속으로 돌아 손해를 봤다. 김옥철은 금메달이 유력했던 단체 추발 1라운드에서도 접촉 사고를 당한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물론 혜택을 받고도 논란에 시달리는 것보다 나은지도 모르겠다. 야구 대표팀은 24명의 선수들 중 병역 미필자 9명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종 엔트리 발표부터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오지환(28·LG)과 박해민(28·삼성)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그러나 군경팀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병역 면제를 위해 대표팀 선발을 기다렸다는 논란이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끊이질 않았다.

대회 내내 병역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은 가운데 남자 양궁 리커브 이우석(21·국군체육부대)의 한 마디가 촌철살인이다. 현역 이등병 이우석은 개인전 결승에서 동료 김우진(26·청주시청)에게 져 은메달을 따 조기 전역이 무산된 뒤 이렇게 말했다. “군대는 나쁜 곳이 아닙니다. 한국 남자들 다 다녀오는데요 뭘….”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