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연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 측 남성이 말싸움이 붙은 상대방을 향해 손찌검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연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 측 남성이 말싸움이 붙은 상대방을 향해 손찌검을 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저 사람 좌파다!”

이렇게 외치는 사람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도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13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 20여명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순간이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끼리 “좌파다”며 충돌

50·60대 남성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로 소개했다. 이들은 준비해온 간이 테이블을 펴고 결사대 입단서를 내놓았다. ‘목숨 내놓는 결사대’들 앞에 별안간 40·50대 정도 돼 보이는 여성들이 끼어들었다. 여성들은 “하지마라”, “대통령님이 이런 거 좋아할 것 같으시냐”며 소리쳤다. 서로를 향한 언성이 높아졌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아요!”

“뭐가 우리야, 저런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야!”

“하도 사람이 많아지니까 분탕질치는 사람들이 많은거야!”

“당신도 분란을 일으키면 좌파가 되는 거야!”

“내가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다.” “아니다 내가 탄기국이다.” “집회는 우리가 신고했다.”

격해진 말싸움 끝에 ‘결사대’ 측 한 남성은 펼쳐놓은 테이블 위에 몸을 슬쩍 기대며 다른 이에게 손찌검을 했다. 경찰이 양측 사이를 막고 나서야 다툼이 간신히 멎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삼성동 자택 옮겨온 지 이틀째. 탄핵 찬·반 측 충돌이 우려됐던 자택 앞은 탄핵 반대측의 자중지란과 기자들을 향한 시위대의 외침으로 소란스러웠다.

전날부터 10~20여명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밤을 새 사저 앞을 지켰다. 2000명이 몰렸던 박 전 대통령 자택 도착 때와 달리 탄핵 반대 시위대 규모는 취재진들보다 적었다.

이들은 현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사들 옆으로 다가가 “억지 탄핵! 원천 무효!” 등을 외쳤다. 일부 참가자들이 둘러쓴 망토에는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른 오전에 잠시 잠잠했던 탄핵 반대 시위대들은 취재진이 몰리고 현장 중계가 이어지자 조금씩 취재진을 향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라” “죄 없는 사람의 목을 날렸으면 됐지, 왜 그리 시끄럽게 하느냐”고 소리쳤다. “우리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아니다, 개인으로 왔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후 2시로 예정된 탄핵 반대 집회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조원진 의원 방문 “보일러가 안돼 거실이 추운 것 같다”

이날에도 박 전 대통령 자택에 이삿짐을 옮기려는 듯 SUV 차량 한 대와 소형 탑차가 오고갔다. 탑차에 담긴 가구로 추정되는 목재가 자택 안으로 운반되는 장면도 목격됐다. ‘친박’ 유력 정치인들 중 오전에는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택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시간여 자택을 다녀온 조 의원은 자택을 나오며 “보일러가 거의 안돼 거실이 조금 추운 것 같다. (박 전 대통령이) 조금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진 50여명과 경찰 50여명이 오전부터 대기한 자택 앞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력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조를 나눠 움직이는 장면도 포착됐다. 자택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자택 마당을 잠시 손질하는 모습도 취재진에게 잡혔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에 들어간 후 처음 맞는 평일인 이날에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손에 쥔 채 직장으로 돌아가는 시민들, 탄핵 반대 시위대를 중심으로 한 논란을 촬영하는 시민들, 사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시민들도 눈에 보였다.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13일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후 나오고 있다. 윤승민 기자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이 13일 서울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후 나오고 있다. 윤승민 기자

■인근 주민들 “이곳 분위기 격해진다고 해서 걱정”

상황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저 인근에 거주하는 한 60대 주부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밝힐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이런 상황까지 온게 아닌가 싶다”며 “어젯밤 자택 앞 소란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주변 이웃들이 이곳 분위기가 격해진다고 해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저 바로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어제 방송화면에 가게가 비치면서 전화가 많이 왔다”며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갈 때 환대받고 가는 걸 봤는데 쓸쓸하게 온 걸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자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분식점 사장은 “어제는 아예 장사가 안됐다”며 “박 전 대통령이 여기 팔아줄 것도 아닌데 집회가 열리면 장사가 안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윤승민·이유진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