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탄핵 사유 4개로 압축해 선고
ㆍ청 문건 유출·최순실 특혜·기업 강요 인정…형사법 위반은 판단 안 해
ㆍ공무원 임면권 남용 등은 ‘증거 부족’, 세월호 7시간은 ‘소추 사유 아님’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8명의 헌법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재판관 전원 일치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8명의 헌법재판관이 참석한 가운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재판관 전원 일치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선고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유는 헌법 3개 조항, 법률 4개 조항 위반 때문이다. 최순실씨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부분에서만 7개의 헌법·법률 위반이 생겼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재는 뇌물 등 형사법 위반은 판단 대상에서 제외해 향후 박 전 대통령과 관련자들의 형사재판 결과에 따른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다.

■ 소추사유 13개서 4개로 정리

헌재는 이날 선고에서 국회가 제출한 탄핵소추 사유 13개를 4개로 묶었고 이 가운데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남용 여부’만을 파면의 근거로 인정했다. 나머지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등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초 국회가 지난해 12월9일 제출한 소추의결서의 사유 13개는 사실관계를 적은 뒤 각각에 3~4가지 법률과 헌법 위반을 달았다. 하지만 헌재가 지난해 12월22일 1차 준비절차기일에서 사실관계가 아닌 행위 유형으로 다시 분류했다. 당시에는 ‘뇌물 등 각종 형사법 위반’까지 5개였다.

하지만 최씨 등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길어지면서 헌재가 굳이 뇌물죄 등 형사 범죄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13개 사실관계는 소추부터 선고까지 그대로지만 형사법 위반이라는 평가만 사라진 것이다.

[박근혜 파면 - 8인 재판관의 선택]‘최순실 국정개입·대통령 권한 남용’만으로 ‘탄핵’ 충분했다

■ 최순실 국정개입이 핵심 사유

헌재는 최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의 권한남용 7가지를 모두 인정했다. 국정에 관한 문건 유출 지시 및 묵인, 최씨의 추천에 따른 공직자 인선, 정유라씨 친구 학부형의 회사 ‘KD코퍼레이션’ 특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강요, 최씨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모스코스 특혜, 최씨의 회사 더블루K 지원, 수사를 받던 롯데그룹에 추가 출연금 강요 등이다.

헌재는 최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공익실현의무(헌법 7조 1항, 국가공무원법 59조 등) 위반,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헌법 15조, 23조 1항 등) 침해, 비밀엄수(국가공무원법 60조) 위배가 있다고 봤다.

■ 형사죄 판단 없이도 파면 가능

헌재는 국회가 당초 제시한 형사법 위반은 판단하지 않았다. 가령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대기업 강제 모금이 직권남용·강요·뇌물에 해당하는지 보지 않았다. 소추의결서에 있는 공무상비밀누설죄 대신 국가공무원법상 비밀엄수 조항을 적용했다. 배보윤 헌재 공보관은 “증거조사부터 형사소송법 절차를 따르지 않아 형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구조”라며 “재판부가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고 강조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인혁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도 충분히 파면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형사재판의 결과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형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서 불필요하게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파면으로 헌법 수호 가능

헌재는 이 같은 헌법·국가공무원법 위반이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사건 결정 때 판례인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지 여부’와 ‘국민의 신임 배신 여부’라는 기준에 비춰 박 대통령에게 해당된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혔다.

이날 헌재는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 여부’ 등 나머지 3개 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세월호 참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등 2명이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에 대해서도 “최씨의 사익 추구에 방해됐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했다는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곽희양·윤승민 기자 huiyang@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