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판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재민 판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들이 좋다는 일과의 중매결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의 연애결혼을 하고 싶었다.”

10여년간 입던 법복을 벗고 이직을 앞둔 정재민 의정부지법 판사(40·사법연수원 32기)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 남긴 소회다. 법조인들의 흔한 변호사 개업과 달리 정 판사는 오는 9일부로 방위사업청 원가검증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판사로서 많지 않은 나이에 직급을 낮춘 그의 선택에 많은 이들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가장 중요한 이직 이유로 “이제는 철저히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서”를 들었다.

정 판사는 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원래 외교안보에 관심많고 국방부서 일할 때 방사청 생기는 과정을 흥미롭게 봤다”며 “전문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내 가치를 높이고 내 인생을 덜 허무하게 만든다”고 방사청 이직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방사청에서 무기를 사고 팔고 개발하는 일 보기보다 엄청 전문적이고 재밌다. 그간 국방부·외교부에서 4년 있으면서 행정부 일의 스케일과 재미와 보람에 홀딱 반하기도 했다”며 “방사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끌어준 거냐, 방사청에서 먼저 제안했냐고도 묻던데… 그저 내 스스로 공고 보고 공채에 응모해서 시험치고 면접봐서 붙었다”고 이직 과정도 설명했다.

정 판사는 군납비리 사건과 관련해 주목받은 판결을 최근 내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의정부지법 형사2단독 소속으로 해군에 식품 납품비리를 저지른 한 업체 대표에게 검찰 구형량(징역 1년 6개월)의 2배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량보다 실제 선고 형량은 낮았던 관례를 벗어난지라 관심을 받았다.

그는 “판사 일이 싫어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라며 “판사로서 많아야 세명(합의부)과 일하는 것이 때로 자신의 허물을 못보게해 위험하다. 나는 이제 수많은 대한민국 사람들과 같이 조직생활에서 내 한계를 확인하고 확장하고 싶다”고도 했다. 정 판사는 또 “축구로 치면 젊은시절부터 감독부터 한 것인데, 이제는 선수로 뛰고 싶었다”며 “사실 대단한 모험도 아니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난 그래봤자 정년 보장되는 공무원되는 것일뿐”이라고도 했다.

정 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제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4년 8월부터 1년 4개월동안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 파견 근무를 한 경력도 있다. 2009년 한·일간 독도 소송 문제를 다룬 소설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집필한 것이 계기가 돼 2011년부터 외교통상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소설 이사부>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2014년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로 제10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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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