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서울지방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 뇌물공여자로 지목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뇌물수수자인 박근혜 대통령 조사도 힘들어진다는 것이 향후 특검 수사의 가장 큰 문제다.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특검으로서는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검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과 불구속 기소를 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방침이다.

법원이 피의자를 구속하는 사유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이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다. 이날 법원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주요 범죄사실이 소명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검이 삼성이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 측에 제공한 뇌물이라고 규정한 430억원에 대해 법원은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특검은 최씨가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와 맺은 213억원대 컨설팅 계약, 평창동계올림픽 이권 개입을 위해 기획 설립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16억원대 후원, 미르·K스포츠 재단의 204억원대 출연금 등을 모두 대가성 있는 뇌물로 봤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대가성을 둘러싼 법리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18일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작된 영장심사는 오후 2시10분까지 3시간40분가량 진행됐다.

이 부회장 측에서는 송우철(55)·문강배(57) 변호사 등 5명이 나왔다. 송 변호사는 법원 내 ‘엘리트 코스’인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을 밟은 판사 출신이다. 변호인들은 이 부회장이 공갈의 피해자이고 지원금 430억원은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 등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요청한 일을 거부할 경우 경영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측이 한 강요·공갈의 피해자”라고 했다.

이 밖에 매출 300조원이 넘는 국내 1위 기업의 총수가 구속될 경우 초래될 경영 공백, 투자·고용 차질,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열거하며 불구속 수사가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 측에서는 양재식 특검보(52)와 김영철 검사(44) 등 4명이 출석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소명할 물증과 관련 진술이 충분하며 증거인멸 우려와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하면 구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430억원이라는 뇌물공여 액수가 역대 최대이며 그 수혜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점,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로 인해 국민연금공단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본 점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법원은 결국 이 부회장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삼성 총수 일가 중 처음으로 구속 수감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검찰과 특검 수사 등을 받았지만 구속된 적은 없었다.

영장심사를 마친 이 부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을 피해 특검 차량에 탑승,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당초 이 부회장은 특검 사무실에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려 했지만 법원은 ‘특혜로 비칠 수 있다’며 원칙대로 서울구치소로 대기 장소를 결정했다.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규칙에 따라 수의를 입고 저녁 식사를 했다. 하지만 19일 새벽 영장이 기각되면서 생애 가장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귀가했다.

김경학·윤승민·박광연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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