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3) 지역 토착비리 키우는 검은 커넥션

박현준 한의사가 2015년 7월 인천의 5층짜리 병원빌딩에 사무장병원을 개설하자는 제안을 받을 때 병원 행정원장이었던 최모 전 구의원이 2년 전 설립한 요양원 건물.  강윤중 기자

박현준 한의사가 2015년 7월 인천의 5층짜리 병원빌딩에 사무장병원을 개설하자는 제안을 받을 때 병원 행정원장이었던 최모 전 구의원이 2년 전 설립한 요양원 건물. 강윤중 기자

의사와 한의사 면허를 불법적인 돈벌이 의료경영에 동원하는 사무장병원 비리는 당사자 간에 비밀리에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에 쉽게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나 한의사, 간호사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누가 병원의 실제 주인인지 자연스럽게 알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동안 병원 내 ‘가짜환자’나 ‘과잉진료’로 인해 본인도 공범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신고가 들어가 조사가 이뤄질 경우 의료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무장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무장들이 지역 내 쌓아놓은 탄탄한 네트워크가 ‘내부고발’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무장과 그 밑에서 일하는 의료인, 사무장의 뒤를 봐주는 보건·행정당국, 수사기관 모두 사무장병원 비리를 키우는 ‘내부자’들인 셈이다.

한의대 졸업 후 5년간 사무장병원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던(경향신문 12월17·18일자 1면 보도) 한의사 박현준씨(41)도 사무장들이 구축한 강고한 ‘인의 장막’에 부딪혀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사무장들은 면접을 볼 때 상대방이 관심을 보인다 싶으면 보통 자신의 인맥을 자랑합니다. 사무장병원임이 외부로 드러나고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키는 거죠.”

박씨는 2015년 7월 사무장병원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인천의 구의원 출신 유력 구청장 후보 최모씨를 만났다. 내과·정형외과가 입주한 5층짜리 빌딩에 한의원을 추가 개설하면서 사무장병원을 운영할 한의사를 모집했는데 당시 병원 건물 전체 행정원장이 최씨였다는 것이다.

2016년 7월 행정원장과 병원장이 사무장병원 비리로 구속 기소됐던 경기 남양주의 한 요양원. 서류상 원장이 새로 바뀌었지만 ‘위장폐업’ 논란이 일고 있다. 채용민 PD

2016년 7월 행정원장과 병원장이 사무장병원 비리로 구속 기소됐던 경기 남양주의 한 요양원. 서류상 원장이 새로 바뀌었지만 ‘위장폐업’ 논란이 일고 있다. 채용민 PD

“면접을 진행한 김모 부장은 최씨가 2014년 구청장 선거에 나갔다 낙선했지만 차기엔 반드시 당선될 거라고 했어요. 보건소 공무원들도 줄을 서고 있다고 했고요. 최씨가 자신과 50 대 50으로 지분에 참여하니 안심하고 사무장병원을 내자고 했어요. 얼마 안 있어 정말 최씨가 김 부장과 함께 면접을 보러 와서 놀랐지요. 최씨는 건물에 입주한 병원장들을 ‘관리원장’으로 호칭하며 한의원을 내면 도와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어요.”

박씨는 당시 녹취파일을 최근 취재진에게 공개했고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최씨를 찾아갔다. 최씨는 처음에는 “김 부장이 누군지 모른다”고 부인하다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휴대폰을 눌러보라고 하자 그제서야 “누군지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한의원을 열기 위해 김 부장과 함께 박씨를 만난 사실은 부인했다. 그는 자신은 단지 월급 500만원을 받고 건물을 관리하는 피고용인에 불과하다고 했다.

박씨가 재단 이사장 처의 동생이 운영하는 건축회사를 통해 병원 수익을 빼돌리는 혐의로 고발한 경기 화성의 한 요양병원도 지역 정치인과 유착 의혹을 받고 있다. 박씨는 “재단 이사장이 규정을 어기고 처와 또 다른 친·인척, 자신의 부하직원을 이사로 등재했는데도 병원허가가 나와 이상했는데 나중에 보니 ㄱ 시의원 아들이 원무과 직원으로 채용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의원 아들은 다운증후군을 앓아 원무행정을 볼 수 없는데도 병원에서 세단차량으로 출퇴근을 도울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ㄱ의원은 병원 설립허가 당시 시의회 보건복지위 위원이었다. ㄱ의원이 병원의 뒤를 봐주고 그 대가로 아들을 원무과에 취업시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ㄱ의원은 이에 대해 “병원허가가 떨어지고 재단 이사장을 처음 알게 됐고 그때 아들 얘기를 하니까 ‘병원에 오라’고 한 것”이라며 “아들은 정식 취업이 아니라 원무과에 봉사를 하러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병원을 둘러싼 의혹은 그뿐만 아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박씨의 신고로 병원이 의사들의 근무시간을 조작해 16억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을 편취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관할 경찰서는 “시일이 너무 지나 의사들의 실제 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조사를 미루다 결국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박씨는 화성의 요양병원에 이어 2014년 들어간 경기 남양주의 요양병원에서는 더 심각한 지역 내 인의 장막을 경험했다. 해당 병원의 행정원장은 남양주시 퇴직 공무원으로 건축업을 하던 ㄴ씨였다. 박씨는 병원에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와 동료 의사로부터 ㄴ씨가 병원의 실제 주인임을 전해 듣게 됐다. 박씨가 그 후 사무장병원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들을 하나둘 수집하는 것을 눈치챈 ㄴ씨는 “어제 남양주경찰서의 고위 인사와 식사를 했다” “내가 간부로 있는 기독실업인연맹 ○○지부에 지역 유력 인사들이 많이 있다”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신고해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이었다.

<b>협박성 문자</b> 2014년 박현준 한의사가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해당병원을 비리 혐의로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후 행정원장으로부터 받은 협박성 문자. 검찰이나 경찰조사가 이뤄지기 전 행정원장이 자신에 대한 신고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현준씨 제공

협박성 문자 2014년 박현준 한의사가 남양주의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해당병원을 비리 혐의로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후 행정원장으로부터 받은 협박성 문자. 검찰이나 경찰조사가 이뤄지기 전 행정원장이 자신에 대한 신고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현준씨 제공

박씨는 이 때문에 2014년 10월 국민권익위에 해당 병원을 사무장병원과 보험사기 등으로 신고하면서 관할 보건소와 경찰서를 ‘기피기관’으로 신청했다. ㄴ씨와의 유착 의심이 드는 관할 경찰서와 보건소는 모르게 조사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보건소는 물론 ㄴ씨까지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박씨가 본격적인 수사 착수에 앞서 2015년 1월 해당 병원에서 퇴직한 후 관할 보건소를 방문하자 보건소 직원이 “○○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고발했느냐”고 툭 던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ㄴ씨로부터도 “허위사실을 밀고한 사람이 당신이 아니길 바란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ㄴ씨의 두터운 인맥을 직접 몸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실제로 1년 후 압수수색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권익위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후 경기도에 사건 조사를 지시한 공문이 병원 내부에서 발견됐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주고받은 공문을 ㄴ씨는 이미 수사 개시 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지부 측은 “우리가 해당 병원에 직접 공문을 보낸 사실은 없다”며 경기도로 내려보낸 공문이 보건소를 통해 ㄴ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경위야 어떻든 ㄴ씨가 신고 사실을 파악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관할 검찰청에 사건이 배당된 후 8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2월 의정부지검으로 사건이 내려오고 그해 10월까지 내가 알기로 7~8월경에 조사가 딱 한 번 있었어요. 한 15분 정도. 검사가 병원 회계담당자에게 ‘사무장병원 맞느냐’고 물어보더니 나한테는 아무런 질문도 안 했어요. 그 후 10월쯤 돼서 검사실에서 병원장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요. 신고할 때 이미 다 기재한 사항인데 어이가 없잖아요. 계좌추적도 검사가 나보고 병원 계좌를 알아보라고 시켰고요.”

박씨의 ‘늑장수사’ 의혹에 대해 해당 검사는 “제보자가 병원과의 이권다툼으로 신고를 했다고 봤고, 그래서 제보자 진술에 신빙성이 낮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조사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박씨는 검사만 믿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후 포천경찰서 지능범죄수사대를 찾아갔다. 의정부지검 관할이면서 병원에서 가장 먼 지역의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신고를 받은 포천경찰서는 즉각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그 후 2016년 2월 담당 경찰관은 박씨에게 “병원장과 행정원장을 전원 구속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며칠 후 갑자기 담당 경찰관이 경기북부지방청으로 발령났다. 후임자로 온 경찰관은 “2016년 6월에 보험사기 캠페인이 있는데 죄가 있으면 그때 캠페인 때 실적으로 쓰겠다”며 수사를 다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던 중 후임 경찰관은 전임 근무지에서 사무장병원 수사 무마 부탁과 함께 4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제서야 박씨는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 정리가 됐다.

“제가 이 사건을 신고한 후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3000만~5000만원, 검찰 수사 단계에서 3억~5억원을 쓰면 무마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관련자들 구속을 앞두고 거래 가능한 사람이 온 거죠.”

포천경찰서 측은 이 같은 의혹 제기에 “원래 수사하던 경찰들에게 인사를 만류했지만 부서를 옮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씨는 “수사 진행 중 담당 경찰과 수시로 연락했지만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7월 행정원장 ㄴ씨와 병원장 ㄷ씨가 구속 기소됐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선고가 예정됐으나 공판이 갑자기 4번이나 더 잡히며 길어졌다. 그사이 구속자들은 건강상 이유로 풀려났다. 경찰에서 행정원장이 실제 병원 주인이라고 했던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은 줄줄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법원은 번복한 진술을 토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의 고발은 결국 사무장병원 비리를 둘러싼 ‘내부자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때서야 박씨는 ‘신고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라는 충고가 생각났다.

강진구·박주연·윤승민 기자 kangjk@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