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한국도시연 ‘젠트리피케이션 보고서’ 현장 가보니
ㆍ문 대통령 구두 산지로 관심받지만 오랜 장인들 ‘한숨’
ㆍ소비 줄고 카페 유입에 월세 급등…“이젠 내리막 끝에”
ㆍ원청 요구 대부분 개인사업자 등록, 산재·연금 ‘사각’

29일 오후 서울 성수동 수제화거리에 있는 한 구두공장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1번 출구 앞에는 ‘성수동 수제화거리’라는 표지판과 홍보물이 보인다. 수제화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련된 장식을 한 수제화 판매점과 ‘최저가 신발’을 쌓아놓은 판매점들이 늘어서 있다. 두어 블록을 더 들어가면 수제화에 쓰일 가죽을 파는 가게들이 이어진다. 오래전부터 수제화로 명성을 얻고 있던 이곳은 지난 7월 말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 있는 구두가 이곳에서 만든 것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29일 찾은 성수동 수제화거리에서 만난 업계 종사자들의 얼굴빛은 화려한 표지판·홍보물과 달리 밝지 않아 보였다. 구두 제작 경력 35년차 이평재씨(55)는 “요즘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수제화를 사러 오는지 커피를 마시러 오는지 모르겠다”며 “우리같이 제작과 판매를 같이하는 곳은 형편이 좀 나은데 하청으로 제작만 하는 공방은 요즘 사정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새 구두를 제작한 명장 유홍식씨(69)는 “지금 일하는 가게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가 450만원인데, 얼마 전 월세를 50만원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대로라면 3년 안에 수제화집들이 다 사라진다. 수제화인들이 다 같이 살 수 있게 정책적으로 도와줘야 수제화거리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수제화거리의 상당수 제화 장인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사업자 신분이어서 산업재해 보상 및 연금 등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여기에 매출 부진 속에 주변 임대료가 올라 ‘산업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이 상인들의 노력으로 번성하자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것)’ 현상까지 발생해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 권도현 기자

서울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 권도현 기자

한국도시연구소가 수제화 업계 종사자 16명을 심층면접해 작성한 ‘성동지역 젠트리피케이션과 산업현황 연구’ 보고서를 보면 성수동과 인근 금호동에는 제화 장인들과 관련 업자들이 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제화 장인들은 물론 가죽 판매업자와 관련 부자재 도매상들도 모두 성수동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제화 장인들은 30년 이상의 오랜 경력을 보유했지만 경력에 비해 버는 돈은 적다. 50대 제화 장인 ㄱ씨는 “30~40년간 일한 제화 장인도 구두 개수에 따라 돈을 받는다”며 “대략 개당 5500원을 받는다. 장인들이 하루 10시간 일해 20개를 만드는데 하루 벌이 11만원이면 30~40년 일한 장인의 노동가치치고는 너무 적다”고 말했다.

반면 장인들은 산재보상, 연금혜택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세금, 식대, 쓰레기처리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다. 장인들이 제화업체에 고용되지 않고 제화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어서다. 구두공장에 출퇴근하는 장인들까지도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고 한다. 수제화 업계의 물량이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가 커서이기도 하지만, 장인들의 의지보다는 원청업체가 시켜서 개인사업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60대 제화 장인 ㄴ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신발 일을 배운 분들이 많아서 그냥 (원청업체) 사장들이 사업자 등록을 해준 경우가 많다”며 “사업자 등록할 때의 계약서도 아예 없다”고 말했다. 20대 제화 장인 ㄷ씨는 “누가 (사업자 등록) 해달라고 했냐. 근로감독관으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지 못하게 하는 방해막일 뿐”이라고 했다. 장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그저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ㄴ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못하지만 장인들은 돈을 적게 받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50대 제화 장인 ㄹ씨는 “제화일 하는 분들이 행정에 문외한이고,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말없이 일하다 보니 삶의 질이나 환경이 곤두박질쳤다”고 했다.

여기에 국내 수제화 생산 기지가 해외로 이전되는 동안 국내 수제화 소비는 감소해 수제화 장인들을 비롯한 수제화 생태계 전반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성수동이 최근 ‘뜨는 장소’로 유명해지면서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수제화거리 조성이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제조업을 기피하고 카페를 선호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월세가 오르면 수제화 제조업자들은 설 자리가 없다”(30대 수제화 장인), “카페거리를 만든다면서 부동산업자들이 세를 올려준다며 건물주들을 들쑤시고 있다. 임대료가 30%나 올랐다”(60대 가죽 판매업자), “카페로 젊은층이 유입되니 수제화 홍보 기회가 생기길 기대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커피 한 잔이 수제화 한 족의 공임보다 비싼 현실에 절망한다”(40대 수제화 장인).

한지은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성수동의 영세 제조업체들에는 저렴하고 안정적인 산업 공간이 필수적이므로 공공 차원에서 임대 산업공간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도시 정책에 영세 사업주 및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윤승민·심윤지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