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슈퍼마켓에 지문 인식 시스템을 설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슈퍼마켓 상품 사재기와 국외 밀수를 막아 생필품 부족, 물가 상승 사태를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마두로는 20일(현지시간) 방송 담화를 통해 지문 인식 장치를 슈퍼마켓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슈퍼마켓을 방문할 때마다 지문 인식 장치를 통과하도록 해서, 주민들의 물품 구매 현황을 파악하고 사재기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설치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정부는 마피아 등 폭력조직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대규모 밀수를 벌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정부의 강력한 물가 통제로 비교적 싼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다. 1달러(약 1000원)면 가솔린 약 760ℓ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국경 넘어 콜롬비아에서는 같은 상품의 가격이 40~400% 가량 더 비싸다. 베네수엘라에서 싼 가격으로 상품을 대량구매한 뒤, 콜롬비아에서 비싸게 되파는 경우가 늘어난 이유다. 주로 주민들이 수차례 출입해 가게에서 제품을 사온 뒤, 차량들로 국경을 넘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국내에서도 암시장이 형성돼 있다. 때문에 서부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벌어졌다. 물가상승률이 60%에 이를만큼 상품 가격도 비싸졌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베네수엘라 정부는 그동안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올해 초에는 슈퍼마켓 고객이 자발적으로 상품 구매 기록을 작성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국가 반밀수 위원회’를 설치해 더욱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정부는 콜롬비아 국경지역의 사재기와 밀수를 단속하면서 12일부터 이날까지 75명을 체포했으며, 47명을 구속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콜롬비아와 접한 서부 술리아주에서만 가솔린 2만ℓ와 식량 30t을 압수했다고 일간 엘우니베르살 등은 전했다.

여기에 지문 인식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정부는 구매자의 물품 구매를 파악·통제해 사재기를 전면적으로 막기로 했다. 야당 지도자 엔리케 카프릴레스는 이에 대해 “공산주의 배급 시스템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고 엘우니베르살이 보도했다.

마두로는 취임 이후 생필품 부족·물가 상승 문제를 경제 논리가 아닌 공권력 동원·통제로 해결하려고 했다. 지난 11월에는 국내 대규모 전자 제품 체인의 상품 판매 가격을 정부가 지정하고, 상품을 사려고 모인 방문객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경제 문제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