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 붕괴 후 인접국 니제로 도피한 그의 셋째 아들 사디 카다피(40)가 6일 리비아에 송환돼 트리폴리의 교도소에 수감됐다. 


사디 카다피는 2011년 아버지가 사살되기 전 니제르로 도피한 뒤 수도 니아메이에서 가택연금돼 있었다. 알리 제이단 리비아 총리는 “리비아의 안보를 혼란시키기 위한 활동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포착돼 니제르 정부에 카다피 송환을 요청했다”고 현지 방송에 밝혔다. 송환 소식 발표 직후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채 머리카락과 수염이 깎인 카다피의 사진이 공개돼 소셜미디어로 퍼지기도 했다.

 

축구광으로도 유명한 카다피는 리비아 축구협회 회장과 국가대표 주장을 겸하기도 했다. 축구협회장 재직 당시 재산 갈취 등의 혐의로 당국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 특공대의 사령관을 맡았다가 아버지가 축출된 뒤 니제르로 도피했다.

 

리비아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독재자 카다피의 자녀는 2명으로 늘었다. 사실상 후계자였던 둘째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는 2011년 11월 민병대에 붙잡혀 서부 진탄의 교도소에 구금돼 있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었지만 사실상 아버지에 이은 2인자였던 둘째는 리비아에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을 저질러 비난을 받았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1년 그를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했으나, 리비아는 그를 ICC에 넘기지 않고 국내 재판만 진행하고 있다.

 

42년간 리비아를 지배했던 카다피는 두 명의 부인 사이에서 7남1녀를 뒀다. 국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면서도 해외 유학, 호화생활 등 특권을 누린 카다피의 자녀들은 2011년 아버지 정권이 무너지면서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여섯째 아들 사이프 알 아랍 카다피는 그해 4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카다피 요새를 급습했을 때 카다피의 손주 3명과 함께 사망했다. 


막내 카미스 카다피는 시민군과의 교전 중에 숨졌고, 육군사령관이었던 넷째 무타심 카다피는 그해 10월 시민군과 전투 중 사망했다. 유일한 딸인 아이샤와 장남 무함마드, 다섯째 한니발 카다피는 2011년 8월 알제리로 피신한 뒤 2012년 10월 어머니인 사피아 파르카시와 함께 오만으로 망명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