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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에서 최대 2년간 취약계층 무상교육
일자리 찾기 도와… 수혜자 4만명 달해


▲ 협동조합은 복지의 한 축
정부, 조합에 세금 감면


이탈리아 트렌토 중앙역 부근에는 노란 외벽에 아기자기 흰 간판이 달린 가죽공방 ‘사무엘레’가 있다. 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가죽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일자리를 알선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1998년 시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하던 이들 4명이 출자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직업교육만 하는 조합을 구상했지만, 조합을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생들이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다. 창업 아이템으로 가죽공방을 택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월27일 공방에서 만난 다니엘라 주시 부대표(35)는 “조합을 만들 무렵 이곳에서는 가죽제품이 크게 유행했다.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 가죽 재료를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 초기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트렌토 협동조합 ‘가죽공방 사무엘레’ 지난 1월27일 이탈리아 트렌토의 협동조합 가죽공방 사무엘레에서 자원봉사자 카트리나 산필리포가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무엘레는 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가죽공예를 가르치고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사무엘레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훈련시켜 노동시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주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 미혼모, 외국에서 온 난민 등을 가르친다. 현재 이곳에서 교육받는 ‘학생’은 25명 정도다. 한 사람이 교육을 받는 기간은 6개월에서 2년, 교육비는 받지 않는다. 직원들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조합 운영을 돕는다. 가죽 바느질을 가르치는 자원봉사자 카트리나 산필리포(60)는 다른 조합에서 ‘문제아’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직원들이나 교육생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산필리포처럼 트렌토 주변 지역의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1900명이 넘는다.

교육생들이 만든 제품들은 공방에서 판매된다. 공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중년 남성이 들어와 “아들 결혼식 방명록으로 쓰려고 한다”며 30유로를 주고 갈색 가죽 표지의 두툼한 노트를 사갔다. 교육을 마친 이들은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일반 기업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무엘레에서 조합 간 네트워크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가방과 종이봉투 따위를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알피(ALPI)도 이곳 교육생들이 많이 취직하는 곳이다.

트렌토에서는 협동조합이 복지 인프라이기도 하다. 사회적협동조합은 노인과 여성, 장애인, 사회 부적응자 등 소외계층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거나(A유형) 직업훈련을 해주는 형태(B유형)로 나뉜다. 1970년대 오일쇼크 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정부가 시민들의 복지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자,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협동조합이 그 틈을 메우게 됐다. 공공부문은 사회적협동조합과 서비스 구매계약을 체결, 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한다. 사무엘레도 시의 위탁을 받아 집중력 장애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나 이주민들에게 직업교육을 해주고 있다.

지난 1월27일 이탈리아 트렌토의 협동조합 은행 ‘카사 루랄레’ 앞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사회적협동조합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다. 트렌티노에는 그런 조합이 82개가 있다. 트렌토 북쪽에 자리잡은 ‘아리아나’는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돕는 조합이다. 어린이들이 다닐 수 있는 케어 센터와 청소년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운영한다. 갈매기라는 뜻의 ‘일 가비아노’는 알코올·마약중독자, 수감자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쳐 벤치나 테이블 등을 만든다. 시내 공원과 놀이터의 벤치와 테이블은 대부분 일 가비아노가 만든 것이다. 핵가족 시대의 가정 내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병인과 가사도우미를 보내는 ‘르 파르팔레’에는 간병인과 가사도우미 400명이 등록돼 있다.

이탈리아 전체로 봐도 사회적협동조합은 복지의 중요한 한 축이다. 이들이 국가 전체 사회서비스의 약 50%를 담당한다. 교육·직업훈련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는 4만명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 조합의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는 물론, 고용보험금이나 후원금에 붙는 세금까지 깎아준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조합에 창업자금과 지원금을 투자해주는 공공기관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8일 이탈리아 협동조합연맹 회원 7000명 앞에서 복지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부양시키는 모터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협동조합을 통해 청년들의 고용기회를 창출해야 하며, 의료영역에서 복지의 새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트렌토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황의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트렌토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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