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6) 삶을 바꾼 프랑스 톨비악의 도서관
ㆍ아부다비

▲ 국립 미테랑도서관 건립
주민 늘고 젊은층 명소로
“살고 싶은 곳으로 바뀌어”

▲ 루브르박물관 분관 지은
프랑스 랑스·UAE 아부다비
“도시 이미지·정체성 바꿔”


프랑스 파리 남동쪽 끝 톨비악 지구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이 있다. 서울 이화여대 ECC를 설계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이 건물을 지었다. 반쯤 펴진 책을 상징하는 L자형 건물 네 채가 안마당을 둘러싼 구조로 된 이 건물은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와 함께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건축물로 꼽힌다.

지난 1월30일 미테랑도서관을 찾았다. 현대적으로 장식된 열람실은 절반 넘게 차 있었다. 대학생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나이 지긋한 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도서관 앞 카페는 재잘거리는 젊은이들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도서관 18층에 올라서자 몽마르트르 언덕부터 에펠탑까지, 파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안내를 맡은 직원 카롤 르리가브는 창밖을 가리키며 “이쪽은 주거지구, 이쪽은 업무지구가 조성돼 있다. 건너편은 공원”이라고 설명해줬다.



프랑스 파리 톨비악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전경. 산업이 쇠락한 뒤 1980년대까지 폐허처럼 방치됐던 파리 남부 톨비악은 국가적인 ‘랜드마크 사업’으로 추진된 도서관 건립과 함께 문화와 학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도서관이 생긴 뒤 교통이 확충되고 공원과 산책길이 조성되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파리 | 남지원 기자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센강 쪽에서 강아지와 함께 걸어오는 주부 야니크(55)와 마주쳤다. 야니크는 톨비악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톨비악은 “물건을 실어나르는 배와 상인들로 북적북적하고 활기찬 동네”였다. 톨비악은 파리 외곽순환도로와 가깝운데다 센강 하구를 끼고 있고 기차역이 있는 교통의 요충이다. 상업과 운송업의 중심지였고, 물류창고와 소규모 공장들도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여기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야니크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전해들은 톨비악의 궤적은 스페인의 빌바오와 거의 비슷했다. 두 곳 모두 산업시대의 물류 중심지에서 낙후된 채 버려진 지역이 됐다. 빌바오가 더러워진 강을 살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도시를 살린 것처럼, 톨비악도 지역을 살릴 핵심 아이템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1980년대까지 거의 폐허로 남아 있던 톨비악에 ‘새로운 도시’로 가는 열쇠가 되어준 것은 도서관이었다. 국립도서관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도시개발을 진행하던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에 새 국립도서관 건설계획을 세웠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은 새 도서관이 파리를 대표할 랜드마크가 되어야 하며, 사회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열린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시 소유지였던 쇠락한 상업지구 톨비악을 도서관 부지로 결정했다. 마침내 1996년 완공된 도서관은 장서 규모만 140만권에 달한다.

도서관은 눈에 보이는 랜드마크를 넘어 지역 전체를 바꾼 거대한 문화 인프라가 됐다. 톨비악을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고, 낙후되고 텅 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뒤이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톨비악이 도심과 더 잘 연결돼야 도서관이 온전히 시민들의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도서관을 짓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주변 공간을 모두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부와 시는 도서관 주변을 재개발해 주거지역과 업무지구로 만들었다. 도서관 건물과 조화시키기 위해 주변 건축에도 도서관의 주재료인 나무와 유리, 메탈, 콘크리트가 주로 사용됐다.

1990년대 후반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야니크는 “도서관이 생긴 뒤 내 삶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이웃들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변의 아름다운 도서관 근처에 조성된 신도시는 파리지앵의 인기를 끌었다. 문화시설과 편의시설, 녹지 공간도 늘어났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스포츠센터가 들어섰고, 지하철이 새로 뚫렸다. 파리 제7대학이 2006년 도서관 옆으로 이전해오기도 했다. 야니크는 도서관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도서관이 생긴 후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교통이 편해졌고 동네가 깨끗해졌어요. 센강과 골목길을 따라 산책하고 집 근처로 소풍 가 햇빛을 쬐는 즐거움을 전에는 몰랐어요.”

문화예술은 쇠락한 도시 이미지를 지우고, 새롭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입시킨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도 한다. 유럽의 낡은 공업도시들에서 도시를 되살리는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가 ‘문화도시 만들기’다. 파리에서 200㎞ 떨어진 랑스도 그런 예다. 석탄산업이 침체돼 폐광 도시가 된 랑스에는 2012년 루브르박물관의 첫 분관이 들어섰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루브르 소장품 205점이 이곳으로 옮겨갔다. 랑스는 루브르 분관을 통해 폐광 도시에서 미술관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개관 첫 해에만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90만명의 관람객이 랑스에 몰렸다.

올해 문을 여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루브르박물관 분관 가상도. 도시와 다리로 연결된 사디야트섬의 2.43㎢ 규모 문화지구에 위치한다. | 루브르 아부다비 분관 홈페이지


도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에 투자하고 나선 대표적인 지역은 중동 석유부국들이다. 걸프 부국들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층 건물’ ‘세계 최초의 7성호텔’이 외신에는 많이 보도됐으나 실상 이들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은 석유 시대 이후에도 살아남을 문화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가장 앞서나간다는 평을 듣는 도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다. 도시와 600m 길이의 다리로 연결된 사디야트섬의 2.43㎢ 규모 문화지구에는 올해 루브르박물관의 세 번째 분관이 문을 연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바다 위의 흰 돔으로 이뤄져 있다. 내년에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분관과 자이드국립박물관이 문을 열면 아부다비는 3개의 거대한 박물관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카타르 왕실은 도하의 거대한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거장들의 작품을 잇따라 사들이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 왕실은 폴 고갱이 타히티 시절 그린 그림 ‘언제 결혼하니’를 약 3억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다. 중동 국가들은 세계 유명 대학 분교 유치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아부다비에서는 미국 뉴욕대 분교가 문을 열었고, 파리 소르본대학 분교도 있다. UAE 두바이에는 런던비즈니스스쿨과 미국 미시간주립대, 카타르에는 미국 조지타운대 등의 분교가 들어서 있다.

일본 요코하마는 바깥에서 인프라를 끌어오는 대신 역사적 건축물과 예술가들의 창조활동을 접목시켜 독특한 문화도시로 발돋움했다. 2000년대부터 ‘창조도시 프로젝트’를 가동한 요코하마가 가장 중시한 것은 예술가들이 정착해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요코하마는 시내에 많이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중 일부를 사들여 예술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다이이치은행 건물이 대표적이다. 요코하마는 도시 고유의 색채를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도시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