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난민 신청자와 활동가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와 난민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난민 신청자인 우간다 출신 나비레 레베카와 나이지리아 출신 엠마누엘 오투, 박상규 대한적십자사 대리, 유시환 동두천 난민공동체 활동가(왼쪽부터)가 22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인근에서 한국의 난민 정책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난민 신청자인 우간다 출신 나비레 레베카와 나이지리아 출신 엠마누엘 오투, 박상규 대한적십자사 대리, 유시환 동두천 난민공동체 활동가(왼쪽부터)가 22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인근에서 한국의 난민 정책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국의 난민법은 ‘난민’을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어 기존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돌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난민을 ‘가난한 외국에서 온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 풍토에서 난민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도, 난민들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는 제도도 아직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난민 지원 관련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남산자락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난민신청자 엠마누엘 오투(44·나이지리아), 나비레 레베카(35·우간다)와 대한적십자사 난민지원업무 담당자 박상규 대리, 유시환 동두천 난민공동체 활동가,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한국 사회가 ‘한국에도 난민이 있구나’라고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 난민신청을 하게 됐나.

오투 = 고국의 내전과 분쟁을 피해 한국에 오게 됐다. 2008년 12월쯤 왔다. 고국 상황이 좋아지면 돌아가려 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2015년에 난민 신청을 했다. 대법원에서 난민 신청이 기각돼 다시 신청을 한 상태다.

레베카 = 우간다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 남편과 결혼하자 가족들이 나를 공격하려 했고, 수도 캄팔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친척 중 한 명이 이사온 집에 오더니 2층 난간에서 빨래를 하던 나를 밖으로 밀어 떨어뜨렸다. 수단에서 일하던 남편도 어느 날 연락이 끊겨 그 후 연락이 안된다. 2011년 4월 한국으로 와 2012년 4월 난민신청을 했다. 올해 대법원이 기각해 다시 난민 신청을 한 상태다.

- 난민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레베카 = 언어가 제일 문제다. 한국인 문화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한국에서 살면서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이 금기시돼 있어 안되는 것인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유시환 = 한국인들이 난민을 모른다는 게 가장 어렵다. 미디어에서 보는 세계적인 난민 이슈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난민이라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사는 난민들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적지 않다. 그런데 히잡 안 쓴 흑인들이 난민이라는 것을 모를 때가 많다.

박상규 = 퇴거 위기에 놓인 난민 가정의 월세를 지원하기 위해 집주인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통화를 하다 “적십자가 왜 난민을 지원하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적십자사가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도 지원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난민 지원을 위해 가정을 방문하다보면 난민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일 = 난민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 자리잡기 전에 유럽 이주 난민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보도가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난민에 선의를 느낄 새도 없이 난민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다.

레베카 = 국내에 온 다른 아프리카인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난민 인정이 보수적이란 생각을 했다. 그와 가족들이 한국과 미국으로 갈라져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런데 미국에선 난민 인정을 해줬는데 한국에 온 이들은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한다.

- 한국에선 어떤 지원을 받고 경제활동을 했나.

레베카 = 난민 신청을 하게 되면 한 달에 40만원 정도 최장 6개월 동안 받는다고 들었다. 다만 실제로 6개월을 다 받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다.

이일 = 현재 난민법은 정부가 난민 신청 후 6개월 동안 생계비로 월 30만~40만원을 지급하고, 이후에는 취업 자격을 주게 돼 있다. 문제는 6개월이 적용되는 기준일은 난민 신청일이란 점이다. 생계비를 받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고, 생계비 지원 여부를 심사하는 데 시간이 걸려 첫 지급이 늦어진다. 결국 6개월분을 다 받지 못한다. 자녀를 부양하는 여성에 가산점이 붙는 반면 남성은 생계비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취업 허가가 나는 6개월 이전까지는 불법 취업을 해야 한다. 정부가 준 생계비를 월세 내는 데 다 쓰면 종교·구호단체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측면이 많다.

박상규 = 생계비 신청 절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을 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형태의 근로가 많다.

오투 = 장시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파트타임 일자리밖에 얻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원단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다행히 절단은 되지 않았지만 피부가 좀 벗겨지고 손끝의 신경이 조금 잘려나갔다.

유시환 = 교사도 있고, 엔지니어도 있고, 박사 출신 교육자도 있는데 한국에 와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3D 업종뿐이라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다.

- 왜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가.

오투 = 난민은 난민신청자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의료보험 혜택도 받아 아이들의 치료에 수만원을 쓰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분쟁 중인 본국으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레베카 = 치안 상태가 좋은 한국에서 기간이 언제 만료될지 걱정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에 난민 심사를 신청했다.

박상규 = 아무래도 심리적 안정이 가장 큰 이유다. 난민 인정을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

이일 =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 난민을 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어떤 변화를 부탁하고 싶은가.

오투 = 많은 사람들이 난민 지원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저 일할 권리를 원한다. 일할 기회를 주면 직접 취업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유시환 =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무국적자로 자라고 있다. 유치원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진학해 졸업하고 한국 사회에서 ‘무국적’ 딱지를 갖고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아이들이 느끼게 될 박탈감이나 그로 인해 발생할지 모르는 사회문제가 걱정된다. 지금 난민에 들이는 비용을 아끼면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박상규 = 난민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시선은 아직 차갑다. 저조차도 일하면서 ‘적십자가 난민을 왜 도와주느냐’라는 말을 듣는 정도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분들도 만나게 된다. 얼마 전 세들어 사는 난민 가정의 사정을 배려해주면서 월세를 받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따뜻한 시선이 많으면 난민들도 용기를 얻고 자립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일 = 난민에 대한 시선이 아직은 부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민에 부정적이던 사람들이 관련 봉사활동을 한 뒤 국내 난민 실태에 안타까워하는 것을 봤다. 한국 사회가 살기 어려워지면서 다른 계층 사람들을 차별하고 욕하는 모습들을 인터넷상에서 많이 보지만 한국 사회는 난민을 포용할 능력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한국에도 난민이 있구나’라고 기억해줬으면 한다.

대한적십자사·경향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끝>


대한적십자사는 한국 내 난민의 법적 지위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국내 체류 난민 가정에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등 상황에 맞는 현금·현물을 지원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결연을 맺은 난민 가정에 매월 2만5000원 상당의 기초생활물품(쌀, 부식, 생필품세트 등)을 제공한다. 올해 4월부터 총 23가구를 대상으로 생계비·주거비·의료비 등 1억700여만원을 후원했다. 또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희망진료센터는 난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적십자봉사원은 정기적으로 난민 가정을 방문해 함께 대화하며 정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기업들이 난민 가정에 출산·산모용품, 미숙아 의료비를 지원하고 돌잔치, 가족여행을 후원하는 맞춤지원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적십자사는 2018년부터는 국내 난민들의 정착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화조사·방문조사·심층면접을 통해 실태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지원이 필요한 난민들은 적십자사 담당 사무실(02-3705-3642)로 연락하면 된다. 난민 후원 문의 전화는 1577-8179이다. 시민들은 ARS 후원전화(060-709-1004)를 통해 1통화당 5000원을 후원할 수도 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