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난민 인정 불허된 한국의 난민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도우라 바스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 정부의 난민불인정 결정통지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도우라 바스가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 정부의 난민불인정 결정통지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미얀마,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한국에서 난민들은 국제 뉴스에서만 접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미 난민들과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국내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두 난민 신청자 가정을 찾았다. 총탄과 살해협박을 피해 한국을 찾은 이들은 난민 신청을 했지만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난민 인정을 꼭 받아야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에서 일할 기회, 살 기회를 보장받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 가족 돕다 탈레반 표적으로 전락

도우라 바스가 내놓은 탈레반의 협박 편지와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살해당한 사촌 사진.

도우라 바스가 내놓은 탈레반의 협박 편지와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살해당한 사촌 사진.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는 언덕 위로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이 많다. 그중 한 반지하방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도우라 바스 압둘 쿠두스(50) 부부와 6명의 자녀들이 살고 있다. 지난 21일 만난 도우라 바스는 자신을 2008년부터 한국에서 중고차와 원단 등을 수입해 아프간에 파는 무역업자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다 2010년 그의 동생이 미군에 탈레반 조직원의 도주로를 알려줬다는 이유로 탈레반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게 됐다. 도우라 바스 역시 동생을 한국으로 피신시켰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표적이 됐다.

그가 현지어로 된 편지와 그 번역본을 함께 꺼냈다. 탈레반 지도자가 그의 동지들에게 보낸 것으로 된 편지엔 “도우라 바스와 가족들 때문에 우리 동료가 죽었다. 그의 가족들은 죽어야 마땅하다. 그들을 도운 사람은 이미 우리가 죽였으며 앞으로도 죽일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결국 도우라 바스는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도 차례차례 한국에 보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프간을 떠난 게 2011년이라고 했다. 그는 “사촌동생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공항까지 데려다줬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의 눈이 붉어졌다.

■ ‘명예살인’ 피해 한국에서 이룬 가족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사미라 세이두의 딸 아미라와 차리티(왼쪽).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사미라 세이두의 딸 아미라와 차리티(왼쪽).

지난 17일 경기 동두천시에서 만난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아담 시세(41)와 가나에서 온 사미라 세이두(38)는 무슬림 가정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살해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세는 “가족들이 나서서 죽이지 않으면 다른 마을사람들이 가족 전체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나는 명예살인 대상이었다”며 “친한 친구가 한 목사를 소개시켜줬고, 그를 통해 한국 대형 교회에서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했다. 세이두는 “무슬림 여성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가사를 돌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싫어 개종을 하게 됐다”며 “우연히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딸이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일한다’며 한국행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가나와 기니에서 각각 온 사미라, 그의 남편 시세와 두 딸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가나와 기니에서 각각 온 사미라, 그의 남편 시세와 두 딸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둘은 2010년 10월 각각 한국을 밟았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난민 신청을 했다. 시세는 인력사무소를 찾아가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세이두는 이태원 미용실이나 미군의 집안 청소부로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그러던 중 세이두는 일하던 미용실에서 시세를 만났다. 한국으로 넘어온 계기가 비슷했던 둘은 금세 친해져 2013년 11월 결혼에 이르렀다. 두 딸 아미라(4)와 차리티(2)도 낳았다. 이들은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 “살 기회를 보장받고 싶을 뿐”

그러나 시세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2015년 10월 난민 인정이 기각된 시세는 “한국 정부에서 기니 정부에 종교탄압에 대해 질의하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답했다”며 “내가 겪은 살해협박은 신빙성이 없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니 국민의 90%가 무슬림이다. 중앙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법보다 무슬림들의 입김이 더 영향력 있다”고 주장했다. 세이두도 대부분 난민 신청자들의 기각 사유인 ‘증거 불충분’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도우라 바스와 자녀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도우라 바스와 자녀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도우라 바스와 가족들은 난민 신청이 기각된 대신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 생명·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할 만한 사람에게 한국 거주를 허가하는 조치다. 다만 난민과 달리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이나 의료보험 등 복지 혜택은 받지 못한다. 그는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도 진료비가 2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시세는 난민 심사를 재신청해 허가 여부를 기다리는 동안 일시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권리는 얻었지만 처음 난민 신청 때 받은 외국인등록증을 회수당했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공장과 인력소개소에서 외국인등록증이 없다며 일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세와 세이두는 폐렴과 중이염을 앓고 있는 두 딸이 걱정이다. 의료보험 대상자가 아니라 의료비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적십자병원에서 난민 신청자들에게 진료를 대부분 무료로 해주는데 동두천에서 멀어 쉽게 갈 수가 없다. 도우라 바스도 “이번 겨울을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적 체류자로 법무부에 취업허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정작 공장주들이 인도적 체류허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인도적 체류자들을 고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 박해받았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도우라 바스의 딸 울리 나히드(13)는 “혹시나 체류허가가 갱신되지 않아 불안한 아프간으로 원치 않게 돌아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과 달리 체류허가를 1년 단위로 갱신해야 한다. 시세는 “난민으로 인정받아 대단한 혜택을 받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그저 일할 수 있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으며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경향신문 공동기획

글 윤승민·사진 강윤중 기자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