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자본·이익·소비주의 극복, 복지·문화 수준 높이려는 시도들

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존중하는 공동체, ‘환경 발자국’을 덜 남기는 지속가능한 주거 지역, 삶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들, 자본의 이익이나 소비주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복지와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덩치를 키우고 거대 산업에 의존해 발전해온 도시들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성찰과 도전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노력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권의 확대’다. 국가기구의 억압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어적인 차원의 인권을 넘어, 인종·성별·민족·장애·성적 정체성 등 어떤 요소로도 차별받지 않고 모든 제도와 시설에 누구든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는 지역 단위, 주로 도시라는 공간을 통해 인권을 ‘보편화’하고 국가 차원의 접근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세계적인 ‘인권 도시’들의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도시들 간의 연대 또한 활발하다.

일례로 미국 워싱턴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은 2008년 처음으로 스스로를 ‘인권 도시’라 선언했다. 시 인권국은 워싱턴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세우고 권리 침해에 대응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은 시 인권헌장에 어긋나는 행위를 조사하고 해결하는 특유의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 덕에 시민들은 소송비용 없이도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프랑코 군사독재에 신음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1998년 ‘도시에서의 인권보호를 위한 유럽 헌장’을 제정한 뒤 이를 유럽연합(EU)에서 채택하도록 기여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극심한 시민 탄압을 겪은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는 ‘인권도시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성소수자 차별부터 원주민 주거 대책까지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다.

인구 밀집과 난개발로 피폐해진 도시를 살리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공간을 만들려는 도시도 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됐던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원전 설립 반대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도시의 발전모델을 새로 만들었다. 1995년부터는 모든 관공서 부지에 저탄소 건물만 세우도록 했고, 건물 신축 때 저탄소 설계를 의무화했다. ‘독일의 환경 수도’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프라이부르크의 목표는 2050년 시 전체 전력 소비를 100%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이다.

브라질 남부의 쿠리치바는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았던 환경 도시다. 버스-자전거-보행로를 연계한 교통 시스템으로 환경 파괴와 교통 혼잡을 동시에 해결했다. 한국의 경우 1인당 녹지 면적이 평균 8.09㎡(2013년 기준)인 반면 쿠리치바는 51.5㎡에 이른다. 호주 시드니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6년 대비 30%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늘리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모든 도시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브라질 남부 포르투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제가 대표적이다. 이 도시는 의회 민주주의로 끌어안지 못했던 마을 단위 공동체의 목소리까지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예산 작성 과정에서부터 ‘델레가도(주민 대의원)’들의 참여를 보장한다. 노숙자들도 자신들의 델레가도를 뽑아 시 당국에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포르투알레그리를 본떠 2000년대 들어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인도에서 최근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암아드미당(AAP·보통사람당)도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 도입하려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대도시 주변에는 예외 없이 슬럼(빈민촌)이 붙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슬럼을 살 만한 곳으로 정비하는 것이 도시 되살리기의 핵심이다. 세네갈 다카르, 케냐 나이로비 등 아프리카 대도시 빈민가에 하수를 처리하고 메탄가스를 추출하는 시설이 생겨났다. 빈민들에게 텃밭을 주고 농산물 판매까지 도와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발리미 베제카야’ 사업은 주민 생계를 도우면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사례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