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5년간 5000억원 넘어… ‘경제민주화’ 동력 상실 우려
ㆍ공정위 “법원 기준 너무 엄격” 재계 “무리한 부과 탓”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부과한 과징금 중 최근 5년간 상급심에서 취소 판결을 받은 액수가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들여가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를 법정에서 뒤집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공정위의 서슬이 갈수록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16일 공정위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15일까지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1조8119억2200만원이다. 이 가운데 고등법원·대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확정판결에서 취소된 과징금은 모두 5117억400만원이었다. 올해 들어 취소된 과징금은 2576억3400만원에 이른다. 지난 11~12일 대법원이 정유업계에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 중 2548억원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고법이 남양유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공정위 과징금 124억원 중 119억원을 취소했다. 


이 같은 판결이 줄을 잇자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고액 과징금이 경영에 지장을 초래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과징금을 부과한다며 되레 문제삼고 있다. 공정위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와 함께 고발조치를 취하면 법원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결하며 형사법 기준을 적용한다. 공정위가 고발조치한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입증해야 할 증거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판부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한다”면서 “그러나 압수수색 권한 없이 임의조사를 해야 하는 공정위가 수년 전 일어난 불공정거래 행위 증거를 정확히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판결을 뒤집으려는 기업의 자본력과 인력 공세에 공정위가 밀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기업들은 거액을 들여 유명 로펌의 고위급 법조인 출신 변호인을 선임한다. 법조계의 ‘전관예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감시 활동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공정위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에서는 공정위 처분이 솜방망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하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비교적 적은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하면 소극적으로 처벌했다는 평가를 듣고, 여론에 따라 형사고발을 했다 패소하면 무리한 처분을 했다는 비판을 듣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공정위 스스로 기업 감시와 불공정 행위 조사에 대해 소극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남양유업 과징금에 대한 서울고법 판결 이후 확실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매길 수밖에 없게 됐다”며 “앞으로 법원에서 패소할 것까지 염두에 둔다면 과징금 부과를 비롯한 기업 감시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