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키신저 “미국의 압박 때문”
ㆍ고르비 “서방 독점적 리더십”
ㆍ‘독일 주요 역할론’ 입 모아

냉전 종식에 기여한 두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83·오른쪽 사진)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91·왼쪽)이 연이어 ‘신냉전’이 도래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키신저는 10일 발간된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냉전의 새 장이 열렸다”며 “이 위험을 무시한다면 비극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는 자신의 진짜 전략을 숨기기 위해 약한 척하고 있다”고 평했다.

키신저는 미국과 서방의 대러시아 압박이 냉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나치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같은 세계 패권 장악이 아니며, 소치 동계올림픽 개최는 러시아가 서구권의 일원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키신저는 이 같은 상황을 미국과 서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며 “시리아 내전이나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필요하다. 도덕적 측면뿐 아니라 안보 측면에서도 (러시아와) 충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고르바초프도 지난 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장벽 붕괴 25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세계는 새로운 냉전에 근접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승리주의에 빠져 독점적 리더십을 추구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동 분쟁은 파트너의 이해관계를 무시한 근시안적 정책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를 자극해 신냉전 위기를 자초했다는 주장도 키신저와 유사했다.

두 사람은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양 진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키신저는 1971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뒤 이듬해 미·중 간의 냉전 후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동서 진영 간 ‘데탕트(화해) 외교’의 문을 열었다. 고르바초프 역시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하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붕괴를 촉발시켰다. 이는 냉전이 끝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독일이 냉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도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했다. 키신저는 “독일이 유럽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나라다.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도 “독일·러시아 간 협력이 없는 유럽 안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키신저는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최근 중간선거에 패해 약해 보이겠지만, 동시에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유력하다면서도 “정권이 바뀌는 것이 미국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