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요양병원 불법의료
ㆍ“유통기한 3~4년 지난 ‘향정신성약품’ 약사 안 거치고 투약”

사무장과 병원장이 구속됐던 남양주의 모 요양병원에서 지난달 15일 70대 약사(왼쪽)가 간호조무사와 함께 환자에게 투약할 약을 조제하고 있다. 이 약사는 구속된 사무장이 행정원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도 일했다고 했지만 당시 한방과장이었던 박현준 한의사는 “약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채용민 PD

사무장과 병원장이 구속됐던 남양주의 모 요양병원에서 지난달 15일 70대 약사(왼쪽)가 간호조무사와 함께 환자에게 투약할 약을 조제하고 있다. 이 약사는 구속된 사무장이 행정원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도 일했다고 했지만 당시 한방과장이었던 박현준 한의사는 “약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채용민 PD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2014년 5월 전남 장성군의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중풍·치매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 22명이 숨지는 참사로 번졌다. 의료 인력과 비상대피 시설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막을 수 있던 사고였기에 ‘육지의 세월호’라는 말이 나왔다. 이 요양병원은 비(非)의료인이 운영한 ‘사무장병원’이었고, 600억여원의 요양급여를 부당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의대 졸업 후 5년간 사무장병원의 쳇바퀴를 돌다 한의사의 꿈을 포기한 박현준씨(41)의 증언(경향신문 12월18일자 1·4·5면 보도)은 사무장병원이 이렇게 독버섯처럼 전국에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회원 수 4500여명의 ‘요양병원 한의사’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회원들 제보를 토대로 볼 때 전국 1400개 요양병원 중 700곳은 사무장병원일 것이라는 의심이 들고 이 중 100여곳은 사무장병원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육지의 세월호가 장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2014년 경기도 남양주시의 모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끔찍한 사고를 경험했다.

“침 치료를 좋아해 저랑 가까이 지낸 최○○ 환자가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간병인 도움 없이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코마’(의식불명)가 왔어요. 노인들에겐 낙상이 위험한 게 뼛조각들이 심혈관을 찌를 경우 바로 응급상황이 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주치의인 병원장은 응급실로 이송하지 않았어요.”

그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사실상 방치되다 숨진 최씨의 마지막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일반 병실의 4분의 1 크기쯤 될까. 계단 밑에 그런 공간이 있었어요. 최씨는 ‘집중치료실’로 불리는 그 공간에 들어가서 마지막을 보냈어요. 산소호흡기도 없어 외부에서 대여를 했고요. 가족들에게는 일주일 정도 지나서 연락을 했을 거예요. 병원은 죽을 때까지 뽑아먹을 것은 다 뽑았죠. 중증환자다 보니 청구액은 더 올라갔고요.”

박씨는 남양주의 이 병원으로 오기 전 2013년 경기 화성시의 한 요양병원에서도 집중치료실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수많은 환자들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본인부담금이 밀렸거나 보호자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은 집중치료실로 이동했다”며 “집중치료는 다름 아닌 마약성 약물의 집중 투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2013년 한의대를 졸업하고 의료인의 꿈과 열정을 키우던 첫해와 다음해, 말로만 듣던 화성과 남양주의 사무장병원은 무력감을 절감케 했다. 박씨는 “요양병원 환자들은 급여수익을 노린 ‘가짜환자’이거나 치료 효과가 별로 없는 노인환자들이었다”며 “사무장 입장에서 제대로 진료할 의사보다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의사만 있으면 될 뿐이었다”고 했다. 자연스레 재취업이 힘든 은퇴한 의사나 개인채무가 많은 의사, 한의대를 갓 졸업한 한의사들이 주로 사무장병원의 먹잇감이 됐다.

남양주 모 요양병원에는 부당급여 청구와 보험사기를 위한 ‘가짜환자’ 외에도 중풍·당뇨·치매 등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환자 90여명이 입원해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고작 4명. 그나마 실제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사람은 박씨와 30대 가정의학과 ㄱ과장뿐이었다.

박씨에 따르면 병원장 ㄴ씨(60)는 재활의학과 출신이었지만 진료는 주로 다른 의사들에게 미루고 외래환자가 오면 잠시 안수기도를 하거나 병원에서 예배 보는 일에 몰두했다. 병원장은 박씨와 대화 중에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경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해서 행정원장(사무장)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병원장은 행정원장 눈치만 주로 살필 뿐, 정상적인 진료의사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른 양방의사인 비뇨기과 의사는 80세가 넘어 보청기를 껴도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환자들 사이에선 ‘3초 진료’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연히 ‘오진’이 빈발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방사선실장에게 들은 바로는 당시 보청기 의사분이 폐결핵을 폐렴으로 진단해 3개월 동안 엉뚱한 치료를 받다 X레이상으로 결핵균이 폐 전체에 퍼지고 난 후 긴급이송당한 환자가 있었다”며 “결핵균이 3개월간 병원에서 창궐했을지 모르는데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유일하게 자신과 함께 환자들을 진료하던 가정의학과 ㄱ과장은 고가의 비급여 시술에 관심이 많았다. 박씨는 “ㄱ과장은 행정원장과 인센티브 계약을 맺고 한 건에 150만원씩 하는 신의료기술을 자주 시술했다”며 “정식으로 허가가 나지 않거나 비급여 항목에도 포함되지 않은 시술이었다”고 했다. 병원 내부엔 ㄱ과장이 전에 있던 병원에서 빚을 많이 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의사들이 제대로 진료의사 역할을 하지 못하자 박씨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잠깐 점심을 먹는 것을 빼고는 하루에 50~60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병원의 실제 주인인 행정원장도 흡족해했다. 한약 처방이 늘어날수록 병원 수익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도 소신껏 진료하기는 힘들었다. 간호조무사인 사무장 아내가 병원이사라는 이유로 일일이 의사들의 진료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사무장 처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걸어놓고 정작 간호업무는 보지 않았어요. 환자 입원 시 가격 협상을 하고 병원을 돌아다니며 온갖 간섭을 했습니다. ‘한방치료와 재활치료를 동시에 받는 날은 청구비가 비싼 재활치료 청구액이 삭감된다’며 ‘환자를 가려서 치료하고 청구를 똑바로 하라’고 호통치기도 했지요.” 병원 운영과 환자 치료를 의사들이 아닌 행정원장과 그의 처가 사실상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병원 건물주도 “병원장은 로봇이고, 병원은 행정원장과 이사(행정원장 처)가 다 주물렀다”고 했다. 박씨는 양방진료부를 간호조무사인 사무장의 처가 다른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방에 보관한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환자별로 양방 주치의 진료 결과를 알 수 없으니 의사들 간 협진은 물론 중대한 의료과실을 견제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80세 보청기 의사가 폐결핵 환자를 폐렴으로 오진한 후 3개월 넘도록 다른 의사들이 알 수 없던 것도 사무장 처가 양방진료부를 독점관리한 데 원인이 있었다.

환자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향정신성의약품의 무단 투여였다. 박씨는 남양주 모 요양병원에 있을 때 약사를 보지 못했고 병원에 약제실도 없었다. 박씨가 2015년 9월 이 요양병원을 포천경찰서에 신고해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통기한이 지난 향정신성의약품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다. 하지만 양방진료부를 볼 수 없는 박씨 입장에서는 개별 환자에게 어떤 약물이 투입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중풍 후유증으로 약간의 치매가 있는 장○○ 환자가 계셨어요. 고향이 전남 장성인데 매일 장성에 밭매러 가겠다고 야단이셨죠. 자연히 병원에서 관리하기 힘들고 옆에 환자들도 불평이 많았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분이 말수가 적어지고 침을 놓으려 할 때마다 ‘그 침 맞으면 나 또 잠들죠’ 하는 거예요. 신경안정제를 투여받는 것 같은데 양방진료부를 볼 수 없으니 환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죠.”

박씨는 포천경찰서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후 남양주 모 요양병원에서 유통기한이 1~2년도 아닌 3~4년이 지난 싸구려 1세대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제야 사무장의 처가 양방진료부를 굳이 혼자서 보관하려 했던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박씨는 그즈음 2013년에 근무했던 화성의 요양병원에서도 ‘우리도 약사 없이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박씨는 “2014년 참사가 발생한 장성 요양병원에서 왜 환자들이 신속한 대피를 할 수 없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장성 요양병원에서 약사는 주 1~2회만 출근했고 약사가 없는 날에는 간호조무사가 향정신성의약품을 조제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강진구·윤승민 기자 kangjk@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