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영남권 신공항으로 낙점된 김해국제공항의 활주로와 계류장 모습. 김해공항은 2026년까지 활주로 1개 등이 추가로 건설되는 등 대폭 확장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선정 과정 동안 영남 지역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대형 국책사업을 경제성은 무시한 채 정치적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추진하다 보니 발생한 후유증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대안으로 결론났지만, 대규모 국책사업을 둘러싼 정치권과 정부의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갈등이나 국고 낭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만 노리는 선심성 국책사업 공약 이제 그만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선심성 공약’에서 출발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2011년 한 차례 백지화됐는데도 지난 대선 때 공약으로 나오면서 다시 부상했다. 최대 10조원의 국비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어 영남 지역 표심을 끌어오기 좋은 카드였기 때문이다.

총선과 지방선거 때도 후보들은 대형 국책사업을 공약으로 내건다. 전남 지역의 단골 공약인 ‘목포~제주 철도 해저터널’도 2012년 타당성 용역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으나 전남도는 내년 대선 공약에 포함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충청권에서는 충남 서산과 경북 울진을 잇는 중부권 동서내륙철도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지난 17일 확정된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일부 구간이 겨우 포함된 수준이다.

후보자들이 선거에서 당선을 위해 내놓은 선심성 공약들은 대개 공수표로 돌아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분석한 19대 국회의 사회간접자본(SOC) 공약 이행률은 12%에 그쳤다.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울진공항처럼 정치적 논리에 따라 100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낭비한 경우도 있다. 소모적인 지역 갈등과 대규모 국고 손실을 막기 위해 선거 공약에서 대형 국책사업 제외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번 사태로 힘을 얻고 있다.

■국책사업 투명 시스템 만들자

해외 용역업체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지난 21일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발표하기 전까지 정부는 조사 과정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과정을 밝히면 그때마다 각 지역 여론이 들끓어 용역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같은 ‘깜깜이’식 추진이 오히려 갈등을 더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해공항 확장안’은 발표를 1개월 정도 앞둔 입지 선정 과정에서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공개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김해공항 확장안은 용역 초기부터 고려됐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은 가덕도와 밀양만이 후보인 줄로 알고 있었다. 신공항 입지 선정 과정에서 김해공항 확장안도 후보 중 하나라는 정보가 공개됐다면 오로지 가덕도와 밀양을 놓고 벌어졌던 극렬한 갈등은 막을 수 있었다.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영남 외 지역에서 다양한 중재안이나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 소지를 없애려면 ‘국책사업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를 설치해 평가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갈등 조정에 나서야

대형 국책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반복되는 지역 갈등을 조정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지역 간 이해가 결부되고 정치적인 이슈로 끌려가 갈등이 극대화되는 현상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남권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지역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센터 교수는 “부산은 김해공항의 항공수요 해결 방안으로 신공항 사업을 추진했고 나머지 도시는 영남권 교통수요 해결 방안으로 접근했다”며 “사업의 전제나 목표가 다르니 어떤 기술적 검토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무엇이 올바른 질문인가’부터 고민할 수 있게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으면 지역들이 서로 자신의 장점만 부각하거나 남의 단점만 지적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갈등을 막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갈등을 봉합해야 할 국무총리실 등 정부 부처는 이번 영남권 신공항 논쟁을 사실상 방관해왔다. 정부가 대형 국책사업 추진 초기부터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당 지자체들과 사업 목표와 추진 과정 등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승민·조형국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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